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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정치인들이 '남한산성'을 보거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0 17:10

수정 2017.10.10 17:10

[여의나루] 정치인들이 '남한산성'을 보거든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완전히 만원을 이룬 관객들 모두 숨죽이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연휴 동안 감상한 영화 '남한산성' 이야기다. 처음엔 영화를 보는 게 내키지 않았다.
우리 역사의 가장 비참한 대목 중 하나가 병자호란이다. 굳이 영화까지 보며 반추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혹시 '역사적 교훈' 운운하며 무익한 말을 보태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이런 글을 쓰게 되었으니 걱정이 현실화되었다고 할까.

교훈까지는 아니어도 말을 보태게 만든 것은 일부 정치인들이다. 영화를 본 후 나름의 영화평을 공개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통의 한 모습일 것이다. 불편한 것은 그 내용이다. 은근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정치적 상대 진영을 향한 적대감이 글에서 묻어난다. 이른바 진보와 보수가 어떻게 하든 영화의 내용과 엮어 상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엄중한 역사로부터 배울 게 그리 없을까. 영화로서는 훌륭한 작품을 보고 당파적 시각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을까. 적에게 둘러싸여서도 서로 싸움에 여념이 없던 그 시대 남한산성의 신료들과 어쩌면 그렇게 닮아 있는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든 병자호란은 명과 청 두 강대국 사이에서 조선이 희생양이 된 사건이다.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인조의 외교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 쇠락하는 명과 떠오르는 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지 못했다는 비난이다. 하지만 당시 주류 사대부들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명나라가 예상보다 훨씬 무기력하게 무너졌고, 청나라의 조선 침략은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그토록 마음이 무거웠을까. 관객들 모두는 왜 숨소리도 없이 화면을 응시할까. 오늘의 현실과 너무도 닮은꼴 역사에 전율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핵위기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서 우리의 신경은 곤두서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과 김정은의 '벼랑끝 전술'의 충돌이 어딘지 불안하다. 외줄타기 하듯 위태로운 우리의 처지를 모두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에 외국인들이 오히려 놀란다고 한다. 하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과 북한 간 말의 전쟁이 한반도에서 또 다른 강대국 대리전의 참화를 불러오지나 않을지 두려움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은 죽기를 각오하고 맞선다.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한다. 최명길은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백성과 사직을 보전하는 게 임금의 할 일이라고 논박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목을 내놓고 왕에게 진언하는 말의 전투를 벌인다. 서로를 향해 살벌한 적대감이 넘친다. 하지만 둘은 상대의 인격을 깊이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의명분 앞에서 기꺼이 힘을 합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은 스스로를 역적이라 칭하면서 조정에 복귀한 후 김상헌을 중용할 것을 인조에게 간청한다. 둘 모두가 충신이라는 인조의 평가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영화를 본 정치인들이 교훈을 얻고 싶다면 이 대목이다.
백성들은 보수냐 진보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대의명분 앞에서 기꺼이 힘을 합치는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헐뜯고 비난부터 하기 전에 영화에서처럼 서로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상대를 높여주는 정치를 할 수는 없을까. 모두가 충신이라는 국민들의 평가는 그때서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왕은 국민이 아닌가.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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