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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퇴근후 카톡'까지 법으로 규제해서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8 17:09

수정 2017.10.18 17:09

[fn논단] '퇴근후 카톡'까지 법으로 규제해서야

얼마 전 필자는 '퇴근 후 카카오톡을 이용한 업무지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와 카카오 간 공조 노력이 무산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말로는 '정부와 기업 간의 공조'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정부의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특정 기능 추가 요청을 카카오 측이 최종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관련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필자는 정부가 사회 관행 개선을 이유로 민간 기업의 서비스에 대해 특정 기능을 요청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협조의 형태를 띤 요청이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객이 소비하는 서비스를 어떠한 형태로 제공할지는 기업의 고유권한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경제적 자유이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한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는 애초 의도한 대로 온전히 시장에 제공돼야 한다.
만약 정부가 바라던 대로 카카오톡 기능에 수정이 가해졌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시장경제에 아주 좋지 않은 전례가 될 뻔했다.

우리의 일상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관행들이 있다. 특정 관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정부를 포함한, 표를 생각하는 정치권은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대개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덤벼드는 것이 정치권의 방식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관행은 단시간내에 규제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시도는 실패하거나 많은 부작용을 양산한다. 근무시간 외에 SNS를 통한 업무지시 관행도 이에 해당한다. 노사 간 소통 및 협약을 통해 개선해야 할 직장문화를 규제로 해결하고자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밤 늦게까지 이어지던 직장 회식문화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면서 비로소 현재의 모습으로 개선되었다. 일부 직장과 직종에서는 아직 과거의 회식문화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규제한다고 바로 없어지겠는가.

이미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근무시간 외 디지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를 제한하는 사내 방침을 도입했다. 직원의 불만이 쌓이면 이는 결국 노동생산성과 기업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주므로 불합리한 직장내 관행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개선하기 마련이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섣부른 규제는 하책(下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무시간 외 SNS 업무지시를 제한하는 관련 법 개정안들이 이미 발의된 상태이다. 하지만 모든 사업장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양한 업종에 따른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발의된 개정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만약 법의 실효성을 위해 열거식으로 구체적 조항들이 추가된다면 자칫 잘못하면 헌법상 기본권인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현재 정치권의 수준에서는 모든 SNS 서비스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기능의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만들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불합리한 관행을 이해당사자 간의 대화와 협약을 통해 개선해가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이다.
모든 경제.사회적 문제를 규제와 명령에 의존하려는 사회를 성숙한 사회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에 해당한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도 이에 걸맞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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