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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노동 유연성 갈등, 해법은 없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9 16:57

수정 2017.10.19 16:57

[여의나루] 노동 유연성 갈등, 해법은 없나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25일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 관련 지침을 폐기했다. 이 양대 지침은 노동유연성 제고를 중시하던 박근혜정부 노동개혁의 상징으로 2015년 '9·15 노사정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했다. 당시 양 노총은 연대투쟁 등으로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함으로써 사회적 대화마저 파탄 나버렸다.

이제 상황이 역전됐다. 새 정부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양대 지침을 폐기했고, 이에 대해 경영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노동유연성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노동계는 강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노동계의 거부감은 유연성 트라우마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 기업, 특히 공공부문·금융기관·민간대기업은 평생직장을 보장했고 이런 관행하에서 근로자들은 고용안정을 누렸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아 수많은 근로자가 졸지에 평생직장이라고 믿었던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근로자와 노동조합은 노동유연성 강화는 바로 더 '쉬운 해고'라고 인식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은 어느 정도일까. 경영계는 노동유연성이 국제적으로 최하위 수준이라고 주장하나, 노동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유연성 관련 법규정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중위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노동유연성은 법규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은 단체협약과 이를 바탕으로 한 취업규칙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이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은 법에 의한 보호뿐만 아니라 단협과 취업규칙에 의해 2중 3중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전체 근로자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이들 부문은 노동유연성이 낮고 경직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과도하게 고용보호를 받는 부담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전가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이 부문의 노동유연성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은 대기업 정규직과 기타 부문 사이에 양극화돼 있기 때문에 전체를 하나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앞으로의 방향은 대기업 정규직은 유연성 강화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고용보호 강화를 하는 것인데 이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복원되고 역할해야 한다.

노동유연성 강화를 위해서는 노사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유연성은 해고의 유연성뿐만 아니라 임금 조정, 근로시간 운영, 배치전환 등의 유연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기업은 해고의 유연성을 마지막 수단으로 삼고 더 부드러운 유연화 수단을 활용하는 관행을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근로자와 노동조합도 적절한 유연성이 결국 일자리를 지키고 더 많이 만들며, 근로자 간 격차를 완화하는 데 기여함을 인식하고 유연성 제고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전략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사의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나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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