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차장칼럼] 집 한채 서민의 '배부른 고민'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24 17:17

수정 2017.10.24 17:17

[차장칼럼] 집 한채 서민의 '배부른 고민'

준공 13년이 지난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니 베란다 새시부터 주방 싱크대 문짝까지 삐걱삐걱 앓는 소리를 한다. 가스레인지에 점화가 되지 않았을 때 수리하던 AS기사는 "오래된 모델이라 또다시 고장나면 전체를 갈아야 한다"는 무거운 얘기를 하고 떠났다. 화장실도, 거실 조명도 열세 살이 된 만큼 대접을 해달라는 건지 이전보다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잦아졌고 돈도 더 많이 달란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3.3㎡당 10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는데 슬그머니 마음을 접게 된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개인적 바람 중 하나가 새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이 됐다.

쏟아지는 분양자료를 보면 요즘 아파트들은 정말 눈이 돌아가게 짓는다.
4베이(BAY)는 기본이 된 것 같고 사물인터넷(IoT) 홈네트워크 시스템, 미세먼지 차단 시스템에 태양광 발전까지 2000년 초반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기죽게 만든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어찌 됐든 내집에 산다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팔아봐야 지금보다 더 외곽으로 가야 하는 처지니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디서 괜찮은(?) 가격에 분양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슬그머니 분양가가 얼마인지 찾아본다.

유리지갑인 1주택 서민의 눈이 높아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그래도 '태어나서 한번은 새집에 살아봐야지' 하며 도전이나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최근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반쯤은 마음을 접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통로가 사실상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면 청약가점이 높아야 한다. 과거에는 중소형 주택의 경우 가점제 적용이 80%였지만 8.2 대책이 나오며 100%로 늘었다. 집이 있으니 무주택기간에서는 0점, 4인가족이니 부양가족 점수에서 20점, 집 살 때 청약통장을 깨버렸으니 0점.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니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여기까지가 집 있는 사람이 배부른 소리였다면 집 없는 청춘들의 걱정은 좀 더 절박하다.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라지만 입주자격이 까다롭다 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게다가 어영부영 취업한 지 5년이 지나면 아파트 특별공급이든 공공임대주택이든 물 건너간다. 예전과 달리 소형 아파트가 더 인기를 끄니 가점에서 밀리는 청년들에게는 말 그대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1주택자와 무주택 청년을 한데 묶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바라보는 부동산시장의 서민.실수요자라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도 없다. 무주택세대주,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6억 이하 집 소유자 모두 정부가 인정한 서민.실수요자다.
1주택자에게는 새집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를, 청년에게는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건설부동산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