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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원정치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25 17:06

수정 2017.10.25 17:06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낳는 산모들이 있다. 이른바 원정출산이다. 미국에서 원정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매년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 원정출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들이 즐비한 것을 보면 이런 추정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자녀가 조국을 버리고 미국인으로 살게 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가 씁쓰레하다.



이와는 반대의 흐름도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찾아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환자들도 있다. 원정치료라고나 할까. 한국이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명품 건강보험제도를 갖추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대상을 넓혀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시대를 열었다. 12년 만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전국민 의료보장체제를 완성했다.

몽골인 A씨는 2015년 5월 한국에 왔다. 석 달간 체류한 뒤 건보 지역가입자가 됐다. 곧장 암치료를 시작했고, 지난해 9월 마지막 진료를 받은 직후 출국했다. 241일 입원 진료를 받으면서 건강보험에서 8400만원 넘게 지원 받았다. 외국인 B씨도 지난해 단 한 차례 진료를 받고 고가의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출국했다. 진료비와 약값 2183만원 중 본인이 655만원을 내고 나머지 1528만원은 건보공단이 부담했다.

사회보장 후발국이었던 한국이 최단기간에 명품 건보제도를 완성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원정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환자들의 행태를 알고 나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건보공단이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올 7월까지 한국에서 건보 자격을 얻어 진료만 받고 출국한 외국인이 2만4000여명에 달한다.

투자 관련이나 유학.취업.결혼 등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다 아파서 건보를 이용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가 처음부터 치료 목적을 숨기고 입국해 건보공단에 거액의 진료비 덤터기를 씌우고 떠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들이 한국을 봉으로 여기지는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