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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우리은행을 위한 변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08 17:24

수정 2017.11.08 17:24

[차장칼럼] 우리은행을 위한 변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 3월 연임했다. 수년간 잠잠했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간 계파 갈등이 그때 처음 불거졌다. 한일은행 출신 외부 인사들이 상업은행 출신인 이 행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공교롭게 이 행장 연임이 결정되던 그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이 행장은 '서금회', 즉 서강대학교를 졸업한 금융인 중 한 사람으로 취임 초기부터 '친박'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연임했고, 스스로 민영화를 성공시킨 우리은행에 첫번째 행장 자리에 올랐다.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된 것은 지난 8월께, 금융권 '적폐청산' 바람이 불면서다. 당시 이 행장은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잔여지분 매각과 지주사 전환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주가는 연중 신고가를 기록했고, 지분 매각에도 청신호가 켜진 때였다. 조직은 순식간에 위축됐다. 이 행장은 모든 행보를 중단했고, '내실 다지기'로 전략을 바꾸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국정감사 중 우리은행 신입행원 인사청탁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우리은행은 자체 감찰 보고서를 통해 항변했다. 우리은행 채용은 면접 전 과정이 블라인드로 진행돼 면접 대상자의 신상정보를 미리 알 수 없다. 청탁이 있었어도 최종 결과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뻔한 변명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 보고서가 되레 '괘씸죄'를 샀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허무하게 물러난 이 행장을 보며 누군가는 '어려울 때 잡을 동아줄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덕에 지난 2년 반, 우리은행이 정부의 코드와 상관없이 유연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아줄을 쥔 최고경영자(CEO)가 외풍엔 강할 수 있어도, 그 줄에 묶인 은행은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이제 우리은행장은 공석으로 남겨졌다. 한 자리를 탐하는 외부 인사들에겐 '꿀 보직'의 기회다. 외풍은 이미 불기 시작했다. 예보는 여전히 우리은행 지분 18.5%를 보유한 1대 주주의 권한을 쥐고 있다. 언제든 합법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이 시작됐고,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못했다. 내부 혼란을 핑계로 행장 선임이 더뎌지면 결국 낙하산이 내려앉을 시간만 벌어줄 것이란 우려도 크다.

지난 국감에서 우리은행 인사비리 대상으로 지목된 인원은 총 16명이다. 전체 지원자의 0.5%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면 차기 행장 공모자 중 최종 선임될 낙하산 인사 1인의 합격률은 몇 %일까. '적임자'라는 뻔한 변명은 사양하겠다. 이제 막 첫돌을 맞는 '민선' 우리은행은 자신의 거취보다 조직을 먼저 위하는 수장을 원한다.
적폐가 또 다른 적폐를 낳지 않길 바랄 뿐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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