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베이징 '중관춘'에서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2 17:01

수정 2017.11.12 17:01

[데스크 칼럼] 베이징 '중관춘'에서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 왕징호텔 방. 관영TV 뉴스에선 저녁 내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동정이 나왔다. 시진핑 1인 천하를 만방에 알린 18차 당대회가 끝난지 일주일도 채 안된 그날. 시진핑은 6인의 새 지도부를 이끌고 중국 공산당 성지 상하이 1차 당대회 개최지를 들렀는데, 중국 최고권력자들이 집단적으로 이런 걸음을 한 건 사실상 처음인 모양이었다.

다소 의아스럽고, 당혹감을 준 장면은 낫과 망치가 그려진 공산당 깃발 앞에 주먹 쥔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구호를 외치는 '황제' 시 주석 모습에서였다. 한걸음 앞선 자리에서 목청껏 선창에 나선 시진핑, 똑같은 포즈로 그의 말을 복창했지만 많이 어색해 보였던 뒷줄 6인의 상무위원. 1980년대 한국 운동권 학생회 출정식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들이 13억 중국 인민의 최고대표자들, 미국과 맞장뜨고 있는 G2 권력 핵심이라니. 그저, 멍하니 TV만 지켜봤다.

2박3일 베이징에서 만난 현지 한국 기업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한국이 중국을 너무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잘 모른다"는 거였다. 중국의 노동력 수준이나 기술력이 한 수 아래라는 한국인만의 착각이 계속되는 사이, 중국은 무섭게 커왔고 이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을 넘볼 정도로 자신감이 대단해졌다는 것이다.

중국을 잘 몰랐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끝도 없다. 중국은 극과 극이 공존하는 모순의 나라,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믿어선 절대 안되는, 그야말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내재화된 실로 창의적 국가라는 사실 등에 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시골 구멍가게에서도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통신 강국이다. 그러면서도 베이징 한복판 4성급 호텔 프런트에선 체크인 처리시간이 30분 이상 걸린다.

이런 모순의 나라를 상대하는 한국 외교는 살얼음 연속인데, 이 모순덩어리 중국의 잠재력은 모른 체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향후 해법은 더 어렵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달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성과로 건져올렸지만, 여전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봉합 뒷맛이 개운치 않은 상태여서 감동은 덜하다. 사드 보복으로 관련 기업들은 아직도 만신창이인데 우리 정부는 극도의 무리수라할 만한 '3불' 입장 표명으로 스스로 폭탄을 품에 안고 살게 되지 않았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류의 씨가 완전히 마른 건 아니라는 현지 증언이다. 갈등 틈새를 파고들며 새길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한류 1세대 주역으로 지금도 중국에서 활동 중인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는 요즘 한국인이 만든 차이나팝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중국의 오래된 가요나 민요를 국내 작곡가들에게 재창작을 의뢰, 이를 차이나팝으로 포장한 뒤 중국 온라인채널을 통해 광범위하게 판매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판 실리콘밸리 베이징 칭화대 부근 중관춘에 모여드는 한국인 청년창업가들 열기도 뜨겁다. 현지 중관춘 창업카페서 만난 이들은 중국에서 창업하는 게 더 유리한 이유로 수십 가지가 있다고 장담했다.
막강한 공산당 리더십으로 믿기 힘든 성장을 이어가는 나라, 그속에서 기회를 찾는 한국 청년, 기업가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 앞에서 의연한 이들의 패기와 열정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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