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8회 역전홈런 타자의 퇴장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고 했던가.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처럼, 옛 사람은 가고 새 사람이 오는 형국이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가 지난달 3일 한국프로야구 15년 경력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지난 1995년 프로 데뷔 이후 국가대표로 나선 국제경기에서 국민이 필요로 할 때마다 한 방을 터뜨려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 선수다.

개인적으로 이승엽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한·일전에서 8회 역전 홈런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이승엽 선수와 닮은꼴 행보를 보인 경영인이 산업계에도 있다. 삼성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인 삼성 윤부근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윤 부회장은 지난 1일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소비자가전(CE)부문장에서 용퇴했다. 그는 하루 뒤인 2일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대외협력(CR) 담당을 맡았다. 외견상 승진이지만 사실상 경영일선 후퇴다. 삼성 세계 TV 1위 신화의 주연이 39년 만에 화려한 '무대 중앙'에서 내려오는 셈. 삼성 오너인 이건희 회장이 병중인 데다,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마저 영어의 몸인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이 우려된다.

일명 'TV 구루(권위자)'로 불리는 윤 부회장은 지난 2006년 삼성전자가 36년 만에 일본 소니를 추월해 세계 TV 1위로 올라서게 만든 주역이다. 삼성이 소니를 추월한 일은 마치 이승엽 선수가 베이징올림픽에서 8회 역전 홈런으로 일본을 꺾은 일과 유사하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 아날로그인 브라운관TV 시장에서 세계 최강이던 일본 소니는 삼성이 넘긴 힘든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2000년대 TV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찾아왔다. 이때 윤 부회장의 주도로 삼성은 사각형 디자인 일색이던 TV 시장에서 와인잔을 형상화한 5각형 모양과 와인 빛깔의 '보르도 TV'를 선보였다. 그 결과 보르도 TV는 통쾌한 '역전 홈런'이 됐다.

윤 부회장과 같은 삼성 임직원들의 수많은 도전과 열정의 스토리가 쌓여 연간 매출 300조원의 삼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삼성맨들의 도전과 열정마저 반삼성 정서에 밀려 폄훼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언젠가부터 '삼성=재벌'이라는 주홍글씨가 20만여명의 평범한 삼성 임직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 재판에서도 반삼성 정서가 반영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면서 삼성 임직원들의 자괴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반삼성 정서의 확산을 반기는 곳은 해외 경쟁사다.
날로 커지는 반삼성 정서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끝으로 지난 9월 독일 국제가전전시회에서 "배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라는 윤 부회장의 토로에서 국내 극심한 반삼성 정서가 국민기업 삼성을 '침몰' 위기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가 가시질 않는다.

양형욱 산업부장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