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문제는 세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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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베스트셀러 경제학 교과서로 유명한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한 경제학의 10대 기본원리 중 하나다. '경제적 유인'을 발생시키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제도'도 그중 하나다. 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므로 '제약'을 동반한다. 만약 그 '제약'이 과도하거나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에 순응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한다. 지난 몇 주 동안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절세행위도 그런 회피 노력이나 다름없다. 큰돈이 오가는 경제행위를 스스로 결정했을 리가 만무한 홍 후보자의 미성년 자녀가 차용증을 쓸 정도면 이는 상당히 공격적인 절세행위다.

특정 제도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이를 회피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때로는 편법도 불사한다면 그 제도는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알게 된 유행어 '내로남불'로 홍 후보자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속증여세제를 이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국제적으로도 최고 수준에 가깝다. 최고세율 5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고 OECD 평균 26.6%보다는 월등히 높다. 기업 주식의 경우 최대주주의 상속은 할증과세로 최대 65%까지 매겨진다. 65%의 세율에 해당되면 세금을 낼 수 있는 재산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사실상 기업 상속은 포기해야 한다. 현재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가업상속공제제도의 경우에도 그 요건이 까다로워 많은 기업이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기업 상속을 위한 다양한 편법과 기법이 동원된다. 대기업의 편법상속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중소.중견기업의 행태도 더하면 더했지 다를 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금에 관해 우리나라는 국제적 추세와 반대로 간다. 세계 각국은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인하경쟁을 벌이고 상속세도 여러 선진국에서 폐지하고 있다.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이 2000년대 들어 상속세를 폐지했다. 좀 더 시기를 거슬러 가면 캐나다, 호주 등은 이미 1970년대에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대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로소득을 통한 부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구호에 주눅이 들어 상속세 인하 논의가 활발하지 않지만 고율의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 효과도 거의 없으면서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어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우선 높은 상속세는 많은 국민과 기업들로 하여금 세금회피를 위한 편법을 찾는 데 골몰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 사회의 자존감을 떨어지게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높은 상속세는 자본축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만약 자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재산의 많은 부분이 국가에 귀속될 경우 사람들은 자본을 축적할 유인이 없어진다. 저축하고, 투자하고 그리고 기업을 일구고 하는 등 일련의 자본축적 행위의 유인이 사라지는 것이다.
근래 들어 여러 나라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혹한 세금에 순응하는 사람은 드물다. 달리 말하면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내로남불'을 보게 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