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국민연금은 제 지배구조부터 돌아보라

국민연금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달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가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행동지침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국민연금이 대주주가 아닌 곳을 찾기 힘들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의결권을 무기로 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사외이사나 감사를 추천할 수도 있다. 재계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심각한 경영간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다. 무엇보다 도입 과정에 정치색이 짙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를 공약했다. 지난 6월엔 보건복지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검토하라는 의견을 냈고, 7월엔 국민연금이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관련 용역을 줬다. 이어 11월 초엔 정치인 출신 김성주 이사장이 취임했다. 정권 교체 뒤 도입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찬성하는 쪽에선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곧 캘퍼스(calPERS) 사례를 자주 든다. 실제 캘퍼스는 1980년대부터 주주행동주의의 선두에 섰다. 지배구조가 나쁘거나 배당에 인색한 기업, 실적이 낮은 기업들을 '포커스 리스트'에 올렸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를 '캘퍼스 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캘퍼스는 100% 자율로 굴러가는 공적연금이다. 현 롭 페크너 이사장은 올해 초 13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최고경영자인 마르시에 프로스트는 공적연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연금 베테랑이다. 정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국민연금과는 딴판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을 공산이 크다. 그때마다 정치적 논란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전에 국민연금은 허술한 자기 지배구조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금운영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분리하고,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로 바꾸려 했다.
탁월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순서를 따지면 노무현 혁신안 처리가 먼저이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나중이다. 그래야 국민연금도 떳떳하게 기업더러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