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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하루히코’號의 변심인가…佛·英·獨 채권시장 ‘긴장해야’

장안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04 07:25

수정 2017.12.04 07:25

유럽시장, 미국보다 유동성 낮아 일본發 충격에 한층 취약
일본은 고질적 디플레이션에 따른 장기불황에 시달려왔다. 2012년 ‘디플레이션 종식’을 공약한 신조 아베 총리가 집권하며 공격적 화폐발행을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 정책을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일본은행(BOJ)은 물가상승률이 2%를 뛰어넘을 때까지 대규모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BOJ 관계자들 입에서 미묘한 뉘앙스 변화가 연달아 감지되는 모습이다. 과도한 저금리 환경이 불러올 위험을 잇달아 경고하는 등 정책선회 조짐으로 읽힐 만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장기불황과 저금리정책을 피해 일찌감치 국외로 빠져나간 일본계 자금이 막대한 규모다.
아무리 미미한 정책변화라도 BOJ 행보가 세계시장에 미칠 적잖은 충격파가 우려된다.

■BOJ 관계자들 “금융완화 부작용”…“출구전략 수단 있다”

‘아베노믹스 행동대장’ 격인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거침없는 완화행보로 ‘헬리콥터 하루히코’, ‘바주카포’로 불린다. 그런 그가 지난달 중순 스위스 강연에서 장기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언급했다. 마이너스금리가 지속되면 금융 중개기능이 떨어지고 양적완화 효과도 반전될 수 있다고 했다.

뒤이어 스즈키 히토시 정책 심의위원도 마이니치신문과 대담하며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강한 정책선회 신호를 보냈다. 그는 “물가가 2% 목표에 이를 때까지 금리가 움직이지 않다가 2% 도달 시 갑자기 뛰는 현상은 적절하지 못하다”며 “물가가 2%에 근접하면 일드커브컨트롤(YCC) 정책 미세조정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은행 MUFJ 출신인 스즈키 위원은 “마이너스금리가 금융기관 수익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금융기관 건전성이 훼손되면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지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OJ의 ETF 매입은 통화정책 틀 일부이고, 가능한 한 일찍 2% 물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되어야 한다”며 “주식시장만 보면서 ETF 매입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매입 규모나 방법을 변경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나카소 히토시 부총재가 한 언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출구전략’ 단어를 입에 담았다. BOJ가 순조로운 출구전략에 필요한 수단과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며 시행 시점은 시장상황에 따라 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출구 모색 시 해외 국채시장 영향은?…유럽, 일본發 충격에 특히 취약

1990년대부터 BOJ는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2001년 들어서는 양적완화 까지 시행해왔다. 일본 투자자들은 고수익 자산을 찾아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투자했다. 해외에 투자된 대규모 일본계 자금을 감안하면 BOJ가 완화페달에서 조금만 발을 떼더라도 해외 금융시장에 충격이 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동성이 미국보다 낮은 채권시장은 일본발 충격에 한층 취약할 전망이다.

일본 재무성 자료를 보면 일본계 자금의 해외자산 보유잔고는 4조800억달러로 집계됐다. 채권 보유잔고가 2조5400억달러이고, 나머지는 주식·펀드에 투자됐다. 미국 주식 투자액이 1조7000억달러, 채권은 1조2000억달러다. 유럽 주식은 3000억달러, 채권은 8450억달러에 달한다. 유럽채권은 프랑스 영국 독일 순으로 많이 담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미한 정책변화에도 엔화 환율이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유럽중앙은행(ECB)의 미세한 통화정책 변경에 유로화가 급등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내년 일본에서 일어날 수 있다.

■아베 내각 반발 넘어서야…자칫 구로다 교체 가능성도

FT는 구로다 총재 등 일본은행 관계자들 최근 발언에 비춰보면 BOJ가 금융왜곡을 이유로 내년 초 정책조정에 나서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출구로 향하기까지는 아베 내각의 반발 등 해결과제가 산적하다.

자칫하면 구로다가 총재직을 잃을 위험도 있다. 지난달 아베 총리는 전 경제고문이자 아베노믹스 설계자인 혼다 에츠로 스위스 대사와 회동했다. FT는 구로다 총재가 YCC 정책을 조기에 철회하려 한다면 교체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앞서 혼다 대사는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려면 참신한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구로다 퇴진을 주장한 바 있다. 현 지도부가 부진한 성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구로다 총재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10월 물가, 목표 한참 미달…“완화 지속 이외 대안 無”

이런 와중에 10월 근원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이 BOJ 목표치를 여전히 한참 밑돈 것으로 발표됐다. 그나마 물가를 견인해온 유가 기저효과가 내년이면 사라져 물가흐름이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BOJ가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완화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비 0.8%로 전달(0.7%)보다 개선됐으나 목표치 2%에는 크게 미달했다. 일본 근원 물가지수는 에너지가격 주도로 10개월째 상승해왔다. 10월 물가도 상승분 75%가 에너지가격에서 나왔다.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근원’ 물가 상승률은 0.2%로 뚝 떨어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6년 후반부터 물가를 견인해온 유가상승과 엔화약세 효과가 약해졌다며 소비확대가 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물가흐름이 둔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가부진이 가격인상을 주저하는 기업들 탓이며, 가계지출 역시 물가를 부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주목된다.

마루야마 요시마사 SMBC닛코증권 수석시장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12월 고비를 넘기고 둔화될 듯하다”며 “물가상승이 이어지려면 임금 인상속도가 빨라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경제분석기관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스(JMA)는 “BOJ가 공격적 완화정책을 지속하는 일 이외에 실질적 대안은 없다”며 “정부 주도의 교육·보육 투자로 수요를 진작하면 경제회생에 도움이 될 듯하다”고 조언했다. JMA에 따르면 가구·의류 등 가계항목 물가의 지속적 상승조짐이 없고, 집세·교육비도 지나치게 안정적이다.
또 임금이 오르더라도 물가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려 내후년 초까지로 정한 2% 물가 달성 시점을 늦춰야 한다고 JMA는 판단했다.

godblessan@fnnews.com 장안나 김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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