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보조금 중독증에 걸린 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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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보조금, 감산도 보조금
자생력 키울 생각은 안하고 농민단체들 눈치만 봐서야

①감산이 필요할 때 증산보조금을 준다. ②감산이 필요한데 증산보조금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면 증산보조금부터 줄인다. ③증산보조금과 감산보조금을 동시에 준다.

쌀정책 얘기다. 현재 정부의 쌀정책은 ①번에 해당한다. 그 결과로 매년 막대한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정책을 수정하기로 했다. 대안은 ②번과 ③번이 있다. 둘 중 ②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③번을 선택하기로 했다. 잘못된 선택이 또 다른 폐해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쌀에 대해 생산조정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생산조정제란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쌀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쉽게 말해 감산보조금이다. 보조금은 1㏊(1만㎡·약 3000평)당 최대 400만원까지 지급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내년과 내후년에 쌀 재배면적을 각각 5만㏊씩 줄일 계획이다. 2년간 27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에 큰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과잉생산 구조하에서 재배면적이 줄면 생산량이 줄어 쌀값이 안정되고 직불금도 줄게 된다. 게다가 재고관리비용도 함께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농식품부는 2년간 투입 예산의 세 배인 8100억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렇게 될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실효성이다. 농민들은 생산조정제로 직불금 수입이 줄어든다면 생산조정제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생산조정제에 응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농가가 늘어나면 그 작물이 과잉생산돼 가격폭락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쌀의 가격리스크를 다른 작물로 전가하는 결과가 된다.

다른 하나는 증산보조금(직불금)과 감산보조금(생산조정지원금)을 동시에 주는 데서 오는 혼란과 불합리다. ②번이 아니라 ③번을 선택함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경제.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쌀값이 떨어지면 직불금(증산보조금)으로 손실을 메워줄테니 걱정 말고 벼를 심으라고 권장한다. 동시에 다른 쪽에선 생산조정지원금(감산보조금)을 줄테니 벼 말고 다른 작물을 심으라고 한다. 농민들은 벼를 심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것이다.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단지 정책 실패에만 그치지 않고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게 한다.

게다가 이래도 보조금, 저래도 보조금이라니…. 이런 식의 정책은 농민들을 보조금 중독증에 빠트릴 위험이 크다. 농업은 보조금 의존도가 높아져 갈수록 자생력을 잃게 될 게 뻔하다. 농민들도 자생력을 잃고 정부 보조금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정부가 감산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면 기존의 직불금부터 줄이는 것이 순서다. 농민단체의 반발이 두려워 직불금은 그대로 두고 감산보조금을 신설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동안 직불금 제도를 고수함에 따라 낭비되는 예산이 매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올해에만 직불금 예산이 1조8000억원에 달했다. 더 이상의 재정낭비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산조정제 도입이 아니다. 과잉생산의 주된 원인이었던 직불금 제도부터 전면적인 수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