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국가는 부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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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에 대해 얼마 전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여기에 대해 필자가 받은 첫 느낌은 '과연 그런가?' 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국가의 막중한 책임을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한 국가의 책임'은 너무 나간 느낌이다. 혹자는 괜한 말꼬리 잡기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 말씀이라는 무게를 생각할 때 자칫하면 국가의 책임영역을 과다하게 확장시킬 수 있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국가가 아무리 안전관리에 많은 노력을 투입하더라도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고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할 일은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원인을 유발한 구체적인 잘못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 향후의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의 발언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정부는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의 책임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구호와 달리 한 개인의 삶을 국가가 온전히 책임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국가의 영향이 상당할 수는 있겠지만 독립된 개인의 삶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그 개인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가는 개인과 완전히 분리된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고, 개인 간 사회적 계약에 의해 국가에 특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편 국가의 부는 국가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기여(세금)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각종 복지정책 등은 이렇게 형성된 국가의 부를 배분하는 제도적 틀이다. 결국 국가는 그 자체로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국가를 매개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돕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여력이 닿는 한 조건 없이 자녀들을 보살피고 도와준다. 하지만 국가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지원은 형식적으로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행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개인의 다른 개인에 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지만 개인 간에는 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국가의 권한으로 어느 정도는 강제할 수 있지만 이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만약 개인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부의 이전이 제도적 강제를 통해 이뤄진다면 이는 '강탈'에 가깝게 된다. 이 수준에까지 이르게 될 경우에는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개인은 부모처럼 희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결국 개인이 다른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의미다. 부모도 자녀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데 개인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구호는 함부로 내세우기 어려운 거대한 약속이다.
만약 구호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고자 한다면 개인의 부담은 커지고, 개인의 영역은 작아지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핵심단위인 '개인'이 위축되는 것이다. 개인의 활기찬 경제활동 없이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성장 없이는 지속가능한 복지, 즉 국가의 책임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선의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구를 잊지 말자.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