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현장르포) 용인 보정동 카페거리...죽었던 상권을 함께 살린 혁신형 소상공인들

최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4 14:52

수정 2017.12.14 14:52

상인들이 직접 제작한 다양한 조명들과 인테리어들이 걸려 있는 용인시 보정동 카페거리 모습.
상인들이 직접 제작한 다양한 조명들과 인테리어들이 걸려 있는 용인시 보정동 카페거리 모습.

경기도 용인 보정동 카페거리에 있는 할레이바 최민우 사장(오른쪽)이 소상공인연합회가 경영개선 컨설팅을 위해 파견한 김헌식 경영지도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 보정동 카페거리에 있는 할레이바 최민우 사장(오른쪽)이 소상공인연합회가 경영개선 컨설팅을 위해 파견한 김헌식 경영지도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용인(경기도)=최영희 중소기업전문기자】 매서운 바람과 함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지난 12일 저녁. 추운 날씨임에도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 카페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인들이 직접 제작한 수제 조명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방문객들을 반겼다. 커피집과 각종 음식점· 술집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깨끗했다.

2년전인 2015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던 황폐한 거리가 2017년 현재엔 핫플레이스가 됐다. 지난 10월말 할로윈 데이엔 무려 2만명이 넘는 사람들로 발 디딜 곳 조차 없는 곳으로 변모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전 지역에서 쫒겨나다시피 이곳에 들어왔다는 인도음식 전문점 '갠지스'의 박은진 사장은 최근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박 사장은 "지난 할로윈데이엔 우리 가게를 포함해서 주변 상인들이 아이들에게 나눠줄 사탕이나 선물 등을 마련하기 위해 수십만원씩을 썼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면서 "이웃 상인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신경써주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날 평일이고 날씨가 추웠음에도 갠지스 가게 앞에는 대기줄이 길게 서 있었다.

보정동 카페거리는 주변에 아파트촌이 밀집돼 있지만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이 몰려있는 죽전역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어 유동인구를 잡아놓기 쉽지 않은 지리적 약점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공원들 사이에 숨어 있어 일부러가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쉽상이다. 90여개 건물에 흩어져 있는 130개 가량의 상점 주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교통도 불편한 이곳의 화려한 변신엔 혁신형 소상공인들의 역발상이 주효했다.

이곳 상인들은 내 집 음식만 맛있으면, 서비스만 좋으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180도 바꿔서 '내 가게' 보다는 '거리를, 상권을 먼저 살리자'는 데 역점을 뒀다. 그리고 내 가게뿐만 아니라 주변 거리부터 가꾸기 시작했다. 건물주들과 상인들이 함께 나서 나무에 전구를 달고, 여러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다소 촌스럽더라도 특색있는 조명들이 가득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떠났던 손님들을 끌어보겠다고 거리공연이며 토크 콘서트 등도 상인들 스스로 유치하고 만들었다. 유명무실화된 할로윈데이 행사도 부활시켰다. 결국 이곳에서 열리는 할로윈데이 행사는 용인에선 가장 큰 축제가 됐다.

보정동 카페거리에서 빵집 'W-스타일'을 운영하고 있는 우경수 사장은 "옆 가게가 잘 돼야 내 가게가 잘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내 가게 청소보다 거리 청소를 먼저하고, 내 가게 인테리어보다 거리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며 바꿔 나간 것이 지금 보정동 카페거리의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카페거리에서 아들과 함께 피자가게와 펍을 운영하고 있는 문종환 사장은 지금도 가로수길 조성, 포토존 설치, 화단 및 쉼터 조성 등 정신없는 하루 하루를 보낸다. 모든 건물주, 모든 상인들이 다 동참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상부상조'하며 동참하고 있다.

이곳에서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는 청년상인도 있다. 하와이 새우요리 전문점 '할레이바'를 운영하고 있는 최민우 사장은 지난 6월 가게문을 열었다. 하지만 메뉴 구성과 홍보 등에서 다소 부족함을 느껴 소상공인연합회에 소상공인 경영개선 컨설팅을 요청, 도움을 받고 있다.

최 사장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 하와이에도 다섯 번을 갔다오는 등 음식엔 자신이 있었다. 다만 인스타그램만 활용해 홍보를 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 특히 왔던 손님들을 다시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아 소상공인연합회에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할레이바를 컨설팅하고 있는 김헌식 경영지도사는 "소상공인들이 개업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권이고 그 다음이 홍보다. 상권은 기존 상권분석사이트 등을 활용한 기초 조사와 현장 조사를 한 뒤 자리를 잡으면 홍보에 신경을 써야한다"면서 "할레이바의 경우 네이버의 소상공인 지원 서비스인 '모두'를 활용해 홍보하고 재방문률을 높이기 위한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한 피해 극복방법, 경영기법(고객관리·서비스, 상품판매, 세무, 회계, 노무 등), 마케팅, 품질 및 서비스 개선, 브랜드 강화, 매출증대 방안, 아이템 개선 등을 컨설팅해 주고 있다.

상인들 스스로 노력해 살아난 카페거리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있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상인들의 노력으로 거리가 살아나면 건물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데,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건물주인들이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특히 정부의 예산이 투입된 상점가의 경우, 임대료 인상폭을 일정 기간 억제하거나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소상공인들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utoo@fnnews.com 최영희 중소기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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