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훈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한국, 주입식 교육체계 바꾸고 고급두뇌 육성 위해 R&D투자
한국, 주입식 교육체계 바꾸고 고급두뇌 육성 위해 R&D투자
"'성공한 스타트업'은 단지 열매에 불과합니다. 열매에 비료를 뿌린다고 해서 또 열매가 맺히진 않죠. 그 저변에 '과학기술'이라는 뿌리를 간과해선 안 됩니다. 4차산업 시대에 맞게 창의적 교육체계로 개편하고, 대학이나 연구소가 제대로 기초과학 연구 및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안에서부터 혁신을 창출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습니다."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가려는 사람이 서로 양보 없이 마주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주훈 KDI 수석이코노미스트(사진)는 창의성이 상실된 채 수십년간 주입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대학교육 현실을 데드록에 비유했다. 대기업 취업에 급급한 현실을 감안할 때 당장 교육체계나 입시체계를 바꾸기 어렵다. 자연스레 대학은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본연의 기능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인데도 다른 나라들과의 4차산업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근본적 원인으로 '창의적 교육시스템 부재→기술 및 인재 부족→소프트웨어 부문 취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과 사회적 지위 차이가 매우 큽니다. 대기업 입사라는 좁은 통로로 청년들이 우르르 몰리기 쉬운 구조죠. 주입식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한계로 교육체계를 당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창의적 교육과 경제구조.사회체계의 수직체계 개선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죠."
김 소장은 최근 KDI와 EBS가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4차 산업혁명,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기획하며 독일을 방문했다. 독일은 정부의 '인더스트리 4.0' 기치하에 전통적으로 강한 제조업을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해 4차산업 경쟁에서 한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인구 120만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는 '스카이프' '트랜스퍼와이즈' 등 막대한 기업가치를 지닌 벤처기업을 대거 탄생시켰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던 독일이 4차산업을 선도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선제적으로 국민적 합의하에 로드맵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해답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반면 우리는 질문 자체를 두려워하죠. 문제가 요구하는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먼저 두려움 없이 질문하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소장은 4차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의 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요자인 기업이 5~10년 후 미래 먹거리사업과 아이템을 대학과 공유하면 대학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안정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이사회에 산업계 인사가 참여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기업도 당장 기술 확보에만 급급하죠. 사실상 산학협력 통로가 막힌 상태입니다. 산학협력이 활성화돼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소장은 정부의 4차산업 지원정책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내뱉었다. 정부는 내년도 기초연구비 등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4차산업 대응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정부의 R&D 투자가 단순 설비투자나 노동인력이 대상이 아닌 고급두뇌를 육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R&D 투자 대부분을 기업에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상당수 기업 투자가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기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더 가다듬는 '상품화 단계'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이 취약합니다. 이와 달리 정부의 R&D 투자는 기초과학에 쓰이는 것이 많습니다. 결국 이걸 깎아버리면 기초과학을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R&D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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