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자율·신관치, 갈림길에 선 한국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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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은행 경영권에 집착.. 경쟁력 또 뒷걸음질 칠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사 경영권 승계를 또 문제 삼았다. 19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최 원장은 "금융사 승계절차가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말했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 원장이 번갈아 승계 절차의 문제점을 경고하고 나섰다. 금융권에선 두 사람의 경고가 내년 봄 임기 만료를 앞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본다. 한국 금융은 자율과 신관치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금융당국은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먼저 금융지주사들은 법과 당국이 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승계 절차를 밟고 있을 뿐이다. 넓게는 금융사지배구조법(2016년 8월 시행), 좁게는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토대다. 금융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내부규범을 만들었다. 물론 그 규범엔 금융당국의 승인 도장이 찍혀 있다. 따라서 승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건 당국이 스스로 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다. 금융사만 몰아붙이는 건 자가당착이다.

타이밍도 적절치 않다. 경기가 진행 중일 땐 룰을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다. 축구 시합이 한창인데 갑자기 심판이 룰을 바꾸면 어떻게 되겠나.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지금 금융위와 금감원이 바로 그렇다. 그러니 당국이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를 탐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승계 절차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은행은 주인이 없다. 따라서 금융지주 회장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사외이사에 앉히고, 그 사외이사가 다시 회장을 연임시킬 수 있다. 이런 쳇바퀴 구조는 분명 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다만 시행 시기는 불공정 시비를 낳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당국이 경영권 승계 절차에 끼어들면 필연적으로 관치 논란을 부른다. 한국에 왜 '금융의 삼성전자'가 없는가. 시시콜콜 간섭하는 관치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최고경영자(CEO)를 뽑을 때 정부 눈치를 보거나 그 자리에 낙하산이 내려온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과 같은 초일류 삼성전자는 꿈도 꿀 수 없다.
윤종남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은 "하나금융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바른말은 귀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