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금융혁신은커녕 발목만 잡은 권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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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돕진 못할망정 걸음마부터 막을 셈인가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20일 최종 권고안을 내놨다. 13인 민간 자문기구로 지난 8월 출범했으니 넉달 걸렸다. 권고안은 한국 금융이 풀어야 할 과제를 두루 다뤘다. 금융위원회가 귀담아들을 대목이 많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1일 "권고안을 최대한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고안 중에는 수긍하기 힘든 내용도 보인다. 투자은행(IB) 규제를 강화하라는 것, 은산분리를 서둘러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 최근 금융지주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을 관치로 보지 않는다는 부분이 그렇다. '혁신위'조차 금융을 규제산업으로 보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국내 투자은행은 채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지난 11월에야 간신히 금융위가 한국투자증권에 한해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했을 뿐이다. 나머지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은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이들 5개사를 초대형 IB라고 부르지만, 외국서 들으면 웃을 일이다. 해외에는 자본금 수십조,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은행이 즐비하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국 골드만삭스는 자본금이 870억달러, 우리돈 100조원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혁신위는 '구멍가게' 투자은행들의 손발을 더 묶으라고 했다. 신용공여, 곧 대출을 기업 인수합병(M&A) 같은 고유업무나 신생.혁신 기업으로 제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건전성은 상업은행 수준으로 높이라고 했다. 투자은행은 시장에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보수적인 상업은행에 비해 행동이 거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투자은행이 혁신성장을 이끄는 엔진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혁신위의 권고는 구더기 무서우니 아예 장을 담그지 말란 말과 같다. 얼마 전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이 정부를 끌고 가시는 분들과 결이 다르다"며 연임 불출마를 선언했다. 권고안을 보니 그 이유를 알 만하다.

경제력에 걸맞은 번듯한 투자은행을 키우자는 소망은 번번이 꺾인다.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키우려 했다. 비록 실현은 안 됐지만 원대한 꿈이라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책 산업은행을 민영화를 통해 국가대표급 투자은행으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산은 민영화를 헛수고로 만들었다. 그 대신 산은은 부실기업 돈 대느라 만신창이가 됐다. 문재인정부도 금융을 미래산업으로 키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혁신위가 내놓은 권고안을 보니 그렇다. 빛바랜 은산분리 규제에 집착하고, 경영권 간섭을 관치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래선 '금융의 삼성전자'는 갈수록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