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앨범 '피트의 눈물' 낸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반도네온.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악기 중 하나다. 연통같이 생긴 주름 상자 옆에 달린 수십개의 단추를 누르며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연주하는 반도네온은
남미에선 마치 피아노처럼 익숙한 악기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인 탱고의 영혼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의 국민음악가 피아졸라는 프랑스에서 클래식 공부를 하던 중 고국으로 돌아와 반도네온을 손에 잡고 '리베르 탱고' 같은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낯선 악기가 한국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2011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도 이 악기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때 반도네온을 연주한 이가 바로 고상지(34.사진)다. 그는 카이스트 재학 중 반도네온의 매력에 빠져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 홍대 인근에서 공연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반도네온 연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주류인 남미의 반도네온 연주자들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강한 애정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런 그가 최근 정규 3집앨범 '피트의 눈물(Tears of Pitou)'을 들고 돌아왔다. 신보 발매 기념 신년 콘서트 '어드벤처 2018'을 준비중인 고상지를 만났다.
―반도네온 연주자로 국내에서 독보적이다. 카이스트를 다니다 연주자로 전향한 계기는.
▲제가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데 제가 조금 드러났을 뿐이다. 원래 대학 때 메탈 밴드 동아리에 있었다. 베이스 기타를 쳤었는데 곡을 카피하다보니 건반 채보가 더 쉽게 느껴져 건반 악기에 관심이 생기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피아졸라의 음악을 듣게 됐는데 그때 반도네온이란 악기를 알게 됐다. 마침 어머니가 아르헨티나에 가실 일이 있어서 중고 반도네온을 구해 독학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새롭게 봐주더라. 국내에서 반도네온을 하는 사람이 따로 없어서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에 이 악기를 붙잡고 계속 가게 됐다. 반도네온은 사운드가 굉장히 강렬하고 격정이다. 주름통이 길어서 다른 악기가 낼 수 없는 공기압이 팍 터지는 느낌이 있는데 이걸 어택감, '아타케(Ataque)'라고 한다. 서정적이고 슬픈 사운드를 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앨범 타이틀의 의미는.
▲피트는 이름이다. 이번 앨범의 모티브가 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주인공은 아니고 적의 역할로 나온 곤충 개미와 인간의 유전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키메라 앤트 '피트', '유피', '푸흐' 캐릭터 중 하나의 이름이다. 애니메이션 도중 피트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흘리는 눈물, 감성적인 부분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곡을 했다. 우리도 살다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지 않은가. 말로 정의하게 되면 그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그 감정이 변질되는 상황. 순수한 감정선을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은.
▲애니메이션은 대다수 모험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모험을 떠나는 이들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곡을 만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의지를 북돋워줄 수 있는 곡 말이다. 어렸을 때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RPG)을 많이 했는데 그때 배경음악과 같은 느낌도 있고. 영화 '록키'의 OST도 너무 좋아했는데 투지를 갖고 긍정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곡을 지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가는 곡은.
▲일본 애니메이션 '헌터×헌터'에서 나왔던 키메라 앤트를 위한 곡이 있다. 곡명은 '푸가 포 더 쓰리(Fuga for the three)'다. 사람이 아니어서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이 많았다. 괴물 같다고 하더라도 세 마리라고 표현하기도 그래서 그냥 숫자 앞에 정관사만 붙였다.
―국내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해왔다. 가장 합이 잘 맞는 뮤지션은.
▲김동률 선배가 가장 맞았던 것 같다. 뮤지션 사이에서도 완벽주의자라고 불리는데 저 역시 그런 부분이 있다. 제가 오히려 다른 이들과 작업하면 저의 음악에 대한 집착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데 김동률 선배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코드가 맞는 것 같다. 김동률 선배와 작업할 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반도네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음악을 아예 못했을거다. 음악 안했으면 요리나 식당이나 애니메이션 제작 같은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대학을 진학한 건 단지 수학을 잘해서였는데 그건 계산기로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나마 학교를 좀 더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음악 동아리가 너무 재밌어서였다. 제가 01학번인데 당시 99학번에 페퍼톤스같은 선배들도 있었고 음악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활동한지 10년이 넘었다. 나에게 반도네온은 그동안 애증의 대상이었는데 요즘 애(愛)가 강해지고 있다. 작곡에 대한 꿈도 많이 커졌다. 근데 작곡과 연주를 동시에 많이 하긴 어렵다. 자연스레 악기를 소홀히 하게 된 부분도 있었다. 최근 우연히 바로크 음악을 듣게 됐는데 피아졸라의 뿌리가 바로크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내년에는 바로크 음악을 더 공부할 것 같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이 나올 것 같고 후에 이병우 음악감독처럼 영화음악도 해보고 싶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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