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처벌과 제도 개선 같이 가야

박준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8 16:48

수정 2017.12.28 16:48

[기자수첩] 처벌과 제도 개선 같이 가야

예전 외국에 잠시 거주할 당시 조명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손님이 주문한 물건의 부품 하나가 사라졌다. 매니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내 대답은 "부품이 없어졌는데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매니저는 단칼에 "그건 관심 없다"며 "중요한 것은 부품을 찾는 일이니 빨리 찾으라"고 지시했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휩싸였다. 제천시청은 재빨리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그런데 한 남성이 갑자기 들어와 "상세한 내용을 유족에게 먼저 브리핑을 해야지 언론에 알리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플레이냐"며 소리 높여 비판했다. 유족들은 화재 원인이나 현장에서 미흡했던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누군가 나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하다. 원활치 못한 소통과 미흡한 대처에 유족들의 상처는 깊어졌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에만 급급한 나머지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고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당시 집회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이 얼마 전 기소됐다. 서울대병원의 백남기 농민 사인 변경에 따라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결국 책임자 처벌에 관심이 쏠리면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관심에서 비켜났다.

이번 제천 화재 참사에도 사회의 관심은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에만 집중돼 있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인적 청산에만 치중한 나머지 제도 개선은 여전히 부진하다. 물론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는 인적 청산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적 청산에만 치중하면서 잘못된 제도와 관행의 개선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도 분명하다.
근본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눈앞의 책임을 추궁하는 일. 어쩌면 우리 사회 깊이 자리 잡은 병폐이자 적폐일 수 있다. 문득 밖에서 울고 돌아온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하는 말이 생각난다.
"아이고. 내 새끼, 누가 그랬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아닌 누가 그랬는지를 찾는 것에 길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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