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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이사람] 광화문 글판 대표작가 '글씨 예술가' 박병철 씨 "소시민 위로하는 멋글씨 쓸때 행복"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7 20:47

수정 2018.01.07 20:47

[fn이사람] 광화문 글판 대표작가 '글씨 예술가' 박병철 씨 "소시민 위로하는 멋글씨 쓸때 행복"

광화문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을 보게 된다.

가슴 떨리는 고백의 시부터, '힘내라' 응원의 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열망의 시까지 봄.여름.가을.겨울 1년에 네 번 바뀌는 글판은 어느 새 시대의 글이 됐다.

올 겨울편은 '겨울 들판을 거닐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허형만 시인의 '겨울 들판에서')이다. 이 글판에 숨결을 불어넣은 이가 바로 '글씨 예술가' 박병철 작가다.

7일 광화문 글판 앞에 선 작가는 "거추장스러운 것들과 불필요한 욕심들을 버리는 마음으로 썼던 글씨"라고 했다. 지난 2009년(겨울편) 동글동글한 필체로 한글의 현대적 감성을 드러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문정희 시인의 '겨울사랑' 중)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박 작가는 지금까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 2012년 봄편), '앞강물, 뒷강물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김소월의 '가는 길') 등 써내려간 광화문 글판의 대표작가다.


지금까지 총 13번가량 참여했으니 가장 많이 광화문에 걸린 작가로 손꼽힌다. 광화문 글판뿐만 아니라 우리은행 본점, 관악구청 청사, 부산시장 벽면, 막걸리 '대박', 사조대림의 냉동식품, JTBC의 방송타이틀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의 멋글씨(캘리그래피)엔 철학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 담겨야 하죠. '사랑'을 쓸 때는 사랑의 감정이 글자 어딘가엔 스며들어가야 하고, '꿈'을 쓸 때는 꿈이 새겨져야 하죠." 그의 아호 역시 '마음'이다. 글씨를 쓰는 일은 자신과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이 돼야 한다. 광고디자이너였던 그가 멋글씨 작가로 전향하게 된 건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손편지로 달래면서였다. "글씨를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두번째 철학은 "그 마음이란 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자작시나 짧은 글 속에 어려운 한자, 한자어 대신 '꽃' '꿈' '사람' 등 쉬운 우리말이 주로 사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작가의 글꼴은 한글을 따뜻하고 정감있게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꼴을 찾아 공부하지요. 버려진 나뭇가지로, 짜장면 먹을 때 쓴 나무젓가락으로, 솔방울로, 휴지로 매일매일 연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 쓰고는 미련없이 버리는 글꼴도 부지기수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한 번만 사용되고 사라지는 글꼴도 많죠." 글씨에 감정을 불어넣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자신 시인이 됐다.
'그대와 있으니 꽃이 보이지 않네 그 꽃 모두 그대가 되었네' '꽃보다 그대가 아름답다 그대가 꽃이다.' 그의 글들이다.
'자연스럽게' '마음담은 글씨' 등이 그의 글을 모아 출간한 책들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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