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송영길 위원장은.. 인권변호사 거쳐 정계 입문, 정치권 몇 안되는 러시아通

4.<끝> 송영길 북방경제위원장

■약력 △55세 △전남 고흥 △광주 대동고 △연세대 경영학과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일본학 △사법시험 36회 △16.17.18.20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인천광역시장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특사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송영길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 서울 광화문에서 자신이 키우는 '차우차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일본어로 된 책을 읽고 보좌진과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며 하루 하나씩 러시아어 단어를 외우는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한.프랑스 의원친선협회를 이끈 데 이어 지금은 한.인도 의원친선협회를 책임지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 대형 유라시아 지도를 걸어두고 매일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그는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다.

송 위원장은 정치권에 몇 안되는 '러시아통(通)'이다. 인천시장 시절 러시아에 바리야크함 깃발을 넘겨준 게 계기가 돼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특사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접견할 당시 네 번이나 포옹을 나눈 일화는 이미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이 친구로 표현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러시아 유력 정치인과는 카톡으로 러시아어로 대화한다. 그의 관심은 유라시아 전반으로 뻗어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한 한반도 신(新)경제지도의 윗부분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 등 유라시아지역과 정치.경제뿐 아니라 보건의료, 문화관광, 지자체 간 교류 등 다양한 교류협력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겁니다."

글로벌한 면모와 달리 송 위원장의 이력은 민주화운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교시절 5.18 항쟁을 겪은 송 위원장은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을 거쳐 배관용접공과 택시기사로 7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엔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더 잘하기 위해'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송 위원장은 저서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를 회고하며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 한반도 평화와 통일, 나라와 지역 발전, 서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국회의원이 아니라도 해왔으며 앞으로 국회의원이 안되더라도 이런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연설했다"고 전했다. 특히 "남북 화해협력의 문이 벽으로 변했다"며 "벽을 뚫어 문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은 송 위원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내년 3.1운동 100주년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이 공감대를 만들 최대의 기회"라며 "올해 꼭 국면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송 위원장은 자신이 키우는 7개월 된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무술년 황금개의 해에 걸맞은 황금빛 차우차우였다.
이름은 '시시(XiXi·嘻嘻).' 중국어로 즐겁다는 뜻이란다. "나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면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키우겠다고 해야겠어요." 송 위원장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중국통'이기도 한 송 위원장과 시 주석의 훗날 만남을 기대해본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