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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日銀이 시사한 것들

장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24 09:42

수정 2018.01.24 09:42

일본은행(BOJ)이 23일 지금의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BOJ는 단기금리를 -0.1%, 10년 금리를 0% 근처에서 유지하는 지금의 기조를 유지했으며 연간 국채를 80조엔 가량 매입하는 양적완화의 큰 틀도 바꾸지 않았다.

올해와 내년 회계연도 성장률 전망은 1.4%, 1.8%로 유지했으며 19/20년 회계연도 중엔 인플레이션이 2%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도 그대로 뒀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2% 물가목표까지 아직 거리가 있으며 출구전략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해 시장의 정책 변경 기대를 잠재웠다.

최근 일은이 오퍼레이션 과정에서 장기채권 매입 규모를 평소보다 줄이면서 글로벌 이자율시장에 적지 않은 변동성을 초래한 바도 있어 일은의 스탠스가 주목을 받았으나 서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 물가 전망 개선 불구 비둘기가 된 구로다 총재
일은의 물가 상승에 대한 전망은 개선됐다.
일은은 3개월 전 "인플레 기대가 약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전날엔 "인플레 기대가 횡보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같은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로다 총재는 억측을 경계했다.

구로다 총재는 인플레 타겟까지 여전히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타겟인 2% 달성을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구로다 총재가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현재의 양적·질적 완화, 즉 QQE에 대한 출구전략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밝힘에 따라 글로벌 중앙은행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 혹은 두려움이 완화됐다.

이런 일본의 입장은 전날 후반부 국내 채권시장에 강세 요인이 됐으며, 지속적으로 오르던 미국채 금리도 떨어뜨렸다.

▲ 딜레마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평가를 좀더 긍정적으로 높였지만 경기부양적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을 시사했다면 이 자체가 현재의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듯한 인플레이션 전망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동시에 엔화는 절상돼 일은이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구로다 총재는 일각의 오해를 막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예컨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을 곧바로 금리인상과 연결시킬 수 없다는 입장 등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물가전망을 둘러싼 하방위험이 더 크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졌다고 바로 수익률곡선 목표를 조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물가의 미미한 개선 기미에 대해 과대평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또 "최근 엔화 강세는 달러화가 다른 통화 대비 약해진 영향이다. 엔화가 강해졌다고 무조건 보기는 어렵다"는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당장 유럽중앙은행 정책회의, 다음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 등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당장 정책의 급선회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아직은 물가 상승세가 미약해 BOJ는 현행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이번주 ECB 또한 통화정책 변경 가능성이 낮다"면서 "선진국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우려는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정책 정상화 여건 만들기 위한 일본의 안간힘
/일본은행의 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전망 변화, 자료: 대신증권
/일본은행의 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전망 변화, 자료: 대신증권


일본의 입장은 유로존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시장은 흔들만한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기 어렵다.

구로다 총재가 상당히 '비둘기적인' 자제로 나온 데엔 지난 9일 초장기채 매입 축소에 따른 시장의 흥분 등을 감안했을 수 있다는 의심도 있다.

글로벌 경기가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어 주요국들의 정책 정상화 움직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이란 데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아울러 경기 상승세에 비해 물가가 따라와 주지 않는 게 한국을 포함한 상당한 국가 중앙은행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사실 시장에선 일본의 물가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의 11월 핵심 소비자물가가 0.9% 수준에 그친 가운데 BOJ의 1.4% 물가 전망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공급 측면의 물가가 아니라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 특히 임금 인상의 상승고리가 만들어진다면 물가 기조적인 상승 흐름을 보일 수 있다.

이러다보니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나서서 기업들에게 "임금을 올려주라"고 촉구하는 일이 거듭 반복되고 있다. 총리가 나서서 '춘투'를 독려하는 듯한 이런 모습은 정책 정상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일본 당국이 보이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의 전경련 격인 일본의 게이단렌 회장이 최근엔 아베 총리의 3%대 임금 인상 필요성에 대해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짧게 보면...그리고 길게 보면
연초 일본은행발 글로벌 금리 급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전날 일은의 태도가 글로벌 이자율 시장의 금리 급등 경계감을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현수준에 비해 시중금리가 추가로 급등할 가능성은 이번 BOJ의 통화정책 이벤트를 기점으로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글로벌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을 최근 크게 높였던 일본 금융당국이 종전과 비교할 때 별로 변화가 없는 정책 기조를 확인해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은행의 한 채권딜러는 "일본은행이 조심스런 모습 이상의 비둘기 색채를 드러냈다"면서 "당장 ECB도 큰 변화를 보이긴 어려워 글로벌 금리 상승세가 한풀 꺾인다면 국내 금리도 제한적이나마 하향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은행의 태도에서 ECB의 조심성을 가늠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한 딜러는 "ECB 역시 일은처럼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하면서 당장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3월 추가인상 가능성이 대세인 가운데 일단 다음주 FOMC 회의가 시장에 큰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은의 정책 유지에도 불구하고 일은이든 ECB든 시간이 흐르면 전체적으로 매파화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일은의 비둘기파적 태도 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리의 큰 트렌드가 이미 바뀌었기 이자율 시장이 롱 트렌드를 형성하기 쉽지 않다는 진단도 많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일시적으로 금리가 반락할 수는 있지만 미국 금리가 일단 3%까지 오를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채권 강세 트렌드가 형성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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