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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착한 분배' 성공하길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24 17:09

수정 2018.01.24 17:09

[fn논단] '착한 분배' 성공하길

사람이든 제도든 뭔가를 바꾸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관련된 사람이 많을수록, 오래될수록 바꾸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후 가장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한 논리는 '잘살아보세'다. 비록 정권이 바뀌면서 구호는 '성장동력산업' '창조경제'로 바뀌었지만 항상 초점은 근로자가 힘들어도 어떻게든 많은 돈을 외국에서 벌어와서 곳간에 쌓아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경제질서는 소수 가진 자에게 성과가 집중되게 돼 있으니 이를 바꿔 근로자에게도 애쓴 만큼 분배가 이뤄지도록 임금을 올려주어 침체된 소비를 늘리고, 그만큼 생산도 늘려서 '모두가 잘살아보자'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자는 것이 현 정부의 착한 생각이다.

수년 전 대학에서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이 큰 이슈가 됐다.
온 언론이 강사들의 어려운 경제실태를 다루면서 대학이 재정 절약만 위해 시간강사들을 착취한다고 보도했고, 급기야 국회가 나서서 소위 시간강사법을 제정했다. '시간강사에게도 생계보장이 될 수 있도록 학기당 9시간을 보장하고 연간 고용해야 하며 연구실도 제공하라'며 교육부까지 독려하고 나섰다. 모든 대학은 당황해했다. 특정과목의 시간강사에게 6시간도 어려운데 9시간을 주라 하고, 그 전공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학기에도 9시간 이상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요구는 대학이 교수를 충분히 채용하지 않고 값싼 시간강사를 활용, 돈을 아끼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은 물론이고 수혜자여야 할 시간강사들도 이 법의 시행을 반대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법으로 인해 극히 제한된 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시간강사가 설 자리를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간강사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한 법이었지만 대학의 현실도, 강사제도의 특별한 취지도 이해하지 못해 5년을 시행되지 못하다가 결과적으로 빛도 못 보고 이번 국회에서 폐기 운명을 맞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대학의 구조개혁을 지원하겠다고 만든 법안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입안해 국회에 올렸지만 4년이 넘도록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80% 가까이가 사립대학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교육을, 개인들이 자기 재산을 투입해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대신 육성해왔다. 규모에 따라, 설립목적에 따라 그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대학들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 등급을 나누고 등급이 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국가장학금 지원을 끊겠다고 한다. 대학이 특정한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학생들이 누려야 할 장학의 권리를 박탈하는 방법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대책 등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 시행돼 몇 달 안에 그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다. 오랜 기간 만들어진 불균형적 경제운용의 관행을 바꾸는 일이기에 사용자나 피고용자나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 어려움의 정도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이기를 바란다. 이 시도는 시간강사나 대학과 같이 사회의 특정 일부 계층에 적용돼 폐기하면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일부 부작용을 대증적 처방이 아닌 근본적 처방으로 해결해서 고른 분배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착한 경제질서를 만드는 시도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전 숭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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