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모든 화폐는 가짜다"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25 17:00

수정 2018.01.25 17:00

[데스크 칼럼] "모든 화폐는 가짜다"

"모든 통화는 만들어진 것이고, 진짜가 아니다. 통화는 신뢰라는 장벽을 넘었기 때문에 사용된다."

가상화폐를 놓고 정부와 금융권, 투자자 간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규제라는 칼을 빼들고 거래소 폐지까지 거론하며 경고장을 던졌다.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화폐의 출현은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를 투기의 온상으로 치부하는 부정적 시각은 단선적이다. 화폐를 매개로 교환체계를 구성한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화폐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지역화폐를 비롯해 가상화폐까지 등장한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로로 인정하는 자세가 보다 합리적이다.

가상화폐의 출현은 기존 중앙집중화된 화폐 권력에 반기를 든 개인들의 유쾌한 반란이다. 가상화폐는 선수들만 거래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확장성과 보편성은 취약하지만 고도로 암호화된 운영체제가 강점이다. 아니면 '야성적 충동'의 결과일까. 주기적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기존 화폐의 안전성은 영원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가상화폐는 금본위제를 위시한 근대 화폐 축적 체제를 허무는 일등공신으로 투자자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중앙에서 통제를 할 수도 없고, 통화량 증가로 가치가 하락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암호화 기술에 기반한 개인간거래(P2P)가 특성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에 연결된 컴퓨터가 64가지 코드를 풀어 채굴(Mining)해 한번에 50개의 비트코인을 생성한다. 투기우려, 화폐 불안전성 등의 경고는 헛소리다. 이렇게 따진다면 금융위기에 따른 기존 은행 간 통화는 무엇인가. 블록체인은 모든 가상화폐 거래를 기록한 일종의 공공장부다. 모든 거래가 전 세계에 분산된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기록은 시스템에 접속한 사람이 모두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알고리즘을 통해 가상통화 거래 시 안정성과 통제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물론 가격변동성은 크다. 이런 운영체제에 무지하면 규제가 따른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한다는 정부의 대책은 그래서 뒷북정책이다.

디지털경제 전문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프로토콜은 돈의 본원적 두가지 기능인 '신뢰'와 '보안'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엄청난 도약의 대표 사례"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뢰와 안전, 소유권은 기존 중앙의 명령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란 말이다

가상화폐 공급량이 처음부터 상한선의 모자가 씌워졌다는 점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다. 비트코인이 폭발적 인기를 얻은 것도 애당초 화폐 공급량을 제한한 데 따른 희소성 때문이다. 화폐 공급량이 달리면서 가상화폐를 생성하는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고 대처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가상화폐를 생성하는 '채굴자'들이 새로운 주인공이다. 이들은 새로 등장한 은행장들이다.
결국 주식시장처럼 가상화폐 시장도 자본력이 큰 기업이나 일부 선수에게 영광이 돌아갈 개연성이 크다.

가상화폐도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것보다는 여전히 돈의 기능들을 스스로 모방 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화폐 대안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을 성취하길 원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가상화폐를 운명의 장난에서 구원할 수 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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