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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미세먼지 왜 '우리 탓'만 하나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31 17:15

수정 2018.01.31 17:15

[차장칼럼] 미세먼지 왜 '우리 탓'만 하나

A나라의 국경지대에 어느 날 대형 제련소가 들어섰다. 이 제련소 굴뚝에서는 매일 다량의 아황산가스가 대기 중으로 쉴새없이 뿜어졌다. 제련소는 A나라의 경제발전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공장을 확장하고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아황산가스 방출량도 증가했다. 그사이 제련소에서 16㎞가량 떨어진 국경 넘어 B나라 마을 주민들은 20년 가까이 아황산가스 피해에 노출됐다. 아황산가스는 B나라 주민들의 호흡기질환뿐 아니라 농작물과 수목에까지 이상발육을 일으킬 만큼 피해가 막심했다.
한계에 직면한 B나라 주민들은 A나라 제련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속수무책으로 유해가스를 계속 마셔야 했다. 결국 자국민의 피해를 참다 못한 B나라는 A나라에 제련소의 오염실태를 공동조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A나라도 지루한 논쟁을 불식하기 위해 국제기구에 조사를 맡겼다. 국제조사위원회는 수년간의 조사 끝에 제련소의 배상 책임을 밝혀냈다. 제련소가 속한 A나라도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웃나라 주민들에게 거액을 배상하며 20년 넘은 분쟁은 종식됐다. 1920~1930년대 캐나다와 미국 간 벌어졌던 '트레일 제련소 사건'이다. A나라인 캐나다 정부가 국경 넘어 주민들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거액을 배상한 건 B나라인 미국 정부가 '영토주권'을 강하게 행사했기 때문이다. 자국 영토 내 경작지와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 만큼 영토주권을 침해당했다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었다.

최근 서울시가 연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해 논란이 됐다. 시는 산하기관인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을 통해 1월 14~18일 발생한 고농도 초미세먼지의 주범이 자동차와 난방 등 우리나라 내부오염 영향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하루 50억원 가까운 혈세를 들여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무료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육지책의 근거였다. 북서풍을 타고 온 중국발 미세먼지는 이번 조치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원인의 60~70%는 중국이라는 '정설'을 깬 것이다. 정부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민간 차량 2부제'를 강제하는 규제를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정부 초기 미세먼지 대책 카드로 내밀었다 슬그머니 접은 경유세 인상 규제가 떠오른다. 차량 2부제 시행도 여론의 눈치를 보다 흐지부지 백지화되는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나 정부의 접근방식이 못마땅하다.
마오쩌둥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지난 30여년간 중국은 엄청난 산업화를 이뤘다. 그 대가로 인접국 한국은 국민이 황사와 미세먼지를 흡입하는 영토주권 침해를 수십년간 감내한 게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항변하거나 영토주권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우리 탓'만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이제는 '미세먼지 속국'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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