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 스포트라이트, 문재인 케어 허와 실]

희귀질환자 의료비 부담 완화.. 일부는 처방 못받을까 걱정

지령 5000호 이벤트

<2> 초고가 의약품 급여화
희귀질환자 100만명 이상 한 달에 약값 수백만원 사용.. 의약품 급여화 기대감 커


'문재인케어'에 따른 초고가 의약품 급여화를 둘러싸고 환자들 반응이 엇갈린다. 많은 환자들은 의료비 부담 완화를 기대하는 반면 일부 희귀질환자들은 급여화에 따라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며 우려하고 있다. 급여화의 풍선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건 당국이 다각적인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희귀질환'은 2만명 이하의 비교적 작은 비중의 인구가 앓고 있는 질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000가지 이상의 희귀질환이 보고됐고 국내 희귀질환자 규모는 100만명 이상이다.

■한 달에 300만원 내고 목숨을 산다

"약 한 알에 5만원입니다. 하루 두 알씩, 한 달 먹으면 300만원인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최근 병원을 찾은 강모씨(36)는 주치의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강씨가 앓고 있는 병은 수혈받은 세포가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식편대숙주병'. 투병생활 때문에 직장도 그만뒀지만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보험이 적용되는 약을 모두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이 약은 마지막 남은 생명줄과도 같았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비보험 A약을 복용한 강씨는 "올 1월 1일 수치가 많이 내려가는 등 상태가 호전됐다"며 "가족 모두 '새해 선물 받았다'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강씨 목소리는 다시 어두워졌다. 해당 약을 복용한 지 1개월이 지난 현재 약효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아 하루에 한 알을 추가로 복용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한 달 약값은 450만원으로 껑충 뛴다. 그는 "이 약을 끊으면 나는 수일 내 사망할 수도 있다"며 "병 때문에 경제활동도 못하는 상태여서 빚을 내 목숨을 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체 희귀의약품 353개 중 40%만 보험적용을 받고 있다. 희귀의약품 절반 이상은 강씨처럼 환자가 100%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희귀의약품은 대부분 초고가여서 의료비 부담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의약품의 급여화가 시급하다는 환자들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장우순 상무는 "의약품 보장성 강화 실행방안이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데다 희귀 의약품 신속등재에 대한 방안이 부족하다"며 "의약품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정부, 제약 등 이해관계자가 포함된 협의체를 구성, 시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여화 풍선효과…처방전 아예 못받기도

급여화를 통해 의약품 가격을 낮추는 정책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비급여를 급여화해달라는 민원 대신 오히려 급여화를 막아달라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이는 '오프라벨 처방(허가외 처방)'과 관련이 있다.

많은 희귀질환자들은 현재 '오프라벨 처방'을 통해 의약품을 구하고 있다. 보통 의약품은 식약처가 정한 용도에 한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외 용도에도 도움이 될 경우 약을 처방할 수 있는데 이를 오프라벨 처방이라 한다. 희귀질환자에게는 명확한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 오프라벨 처방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약을 처방할 수 있는 환자 범위를 정해 급여화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의사가 처방 가능한 환자 범위에 속하지 않는 희귀질환자들에게 해당 약을 오프라벨 처방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급여화된 약을 임의로 오프라벨로 처방했다가 환자들이 약효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심평원에 고발하면 약제비를 물어야 했던 사례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교수는 "보호자가 비급여라도 투여하겠다고 해서 투약했다가 약효가 없다고 판단해 추가 처방을 거부했다. 그랬더니 보호자 측이 심평원에 고발해 병원이 약제비 전액을 환불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사가 오프라벨 처방을 해주다가도 약이 급여화되면 처방을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급여화 이후 환자들이 오프라벨 처방을 받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의로 구성된 '다학제적위원회'를 전국 71개 병원에 설치, 오프라벨 처방 승인신청을 한 환자에 한해 심사하고 있다. 그러나 오프라벨 처방 승인 보장이 없어 '보험등재는 바라지 않는다. 이전처럼 오프라벨 처방을 제한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환자들 호소가 이어진다.

실제 희귀질환자들은 급여화된 약에 오프라벨 처방을 해주는 병원을 찾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하고 다닌다. 전남 여수시에 거주하는 천모씨(33.여)는 4년 전 중등교사로 임용되자마자 유전성 소뇌위축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천씨는 백혈병환자에게 보험을 적용하는 T약이 증상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해당 약을 처방해줄 수 있는 서울.경기권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병원들이 "백혈병치료제를 소뇌위축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은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다"며 오프라벨 처방을 거부해서다.

천씨 아버지(64)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 약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교수님 한 분을 만나 겨우 처방을 받았고, 딸은 현재 다시 교편을 잡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며 "대한민국 의사 중 한두 명은 처방해줘 치료를 계속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처방후 보고 통한 허가 요구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신현민 회장은 의약품 급여화 이후에도 오프라벨 처방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급여화 이후 아예 처방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생긴다"며 "비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다"고 전했다. 신 회장은 "다학제적위원회로부터 허가받고 오프라벨 처방을 하면 진행 경과를 심평원에 사후보고하게 돼있다"며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사후보고를 검토해 효능이 인정된 의약품은 임상한 것으로 보고 처방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처방기준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pio@fnnews.com 박인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