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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세월호의 무거운 짐 내려놓을 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1 18:05

수정 2018.02.01 18:05

[여의나루] 세월호의 무거운 짐 내려놓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공감능력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생 문재인은 재학생 후배들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았다. 유치한 주장도 경청한 후 "그렇습니까"라는 말로 공감을 표하곤 했다. 말을 놓으라는 후배들의 청에는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요"라고 답했다.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침통한 표정은 가식이 아님을 믿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을 '우리 이니'라고 부르는 열광적인 팬들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그런 모습를 탓할 이유는 없다. 지도자의 진정성에 목말라 하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따져보아야 할 의문이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감 외에 무엇인가이다.

재난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가. 청와대가 비상사태처럼 대처해야 하는 참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모든 화재에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가. 대통령까지 나서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나. 청와대에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상황이 나아지나. 솔직히 공허한 멘트일 뿐이다. 장관이 현장을 지휘하고 총리, 대통령이 내려오면 오히려 방해만 된다. 수습에도 손이 모자란 터에 상황판까지 만들어 재난현장에서 현황을 보고한다. 오래된 풍경이지만 한편의 소극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장관이 허겁지겁 달려가지 않아도 될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대통령이 아닌 현장 책임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모든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터다. 소방관 등의 증원 움직임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대비도 하기 전 유사한 참사가 연이어 터지니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 무엇이 문제인지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 모두 아직도 세월호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물론 이들을 공격하는 야당 역시 세월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몰락은 사실상 세월호 사건부터다. 미흡한 사후 대처에 더해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기름을 부었다. 박 대통령과 세월호를 연계시켜 불을 붙인 당시 야권의 공세에 정권 붕괴가 시작됐다. 매번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탓이라고 공격하는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그런 세월호를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모두 세월호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도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공감능력을 넘어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여당의 변명도 그쳐야 한다. 자신들을 포함해 순순히 집권당의 정책에 협조한 야당이 있었는가 묻고 싶다. 대의명분이든, 타협이든 야당을 설득하는 능력 또한 집권당의 역량이다. 야당도 사고 때마다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지 말아야 한다. 억울한 마음이야 있겠지만 반사이익만으로는 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임시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국회는 3건의 소방안전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말 그대ㄱ로 뜨거운 맛을 보아야 정신을 차리는 것인가. 소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그들이 한없이 짜증스럽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 지인이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위대한 국가라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리는 없다.
그저 그 경험을 절대 허비하는 법이 없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대통령과 여당, 야당 모두 위대한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경험을 허비해 왔다.
더 이상 경험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월호부터 벗어나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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