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경청의 정치와 자문기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제조업자문위원회와 전략.정책포럼, 인프라위원회 등 3곳을 전격 해산했다.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대통령 자문위원들이 줄사퇴한 데 대한 분풀이 차원이었다. 이들은 앞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유혈사태에 대해 트럼프가 양비론을 펴자 크게 반발했다. 인종차별을 묵인했다는 이유였다.

반면 소통에 익숙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공식 자문그룹이나 각종 외부 자문그룹들도 역대 어느 정권보다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각계 인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소통을 즐겼다.

오바마는 초청인사들과 이란 핵문제나 쿠바 국교정상화 등 주요 국정 이슈뿐만 아니라 퇴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 건립계획, 부족한 모금 현황 등 개인적 고민거리에도 조언을 구했다.

대통령제 역사가 짧은 우리는 자문기구란 낡은 기구쯤으로 여겨지면서 경시받는 일도 많았다.

지난 2000년에는 당시 이한동 전 총리는 헌법상 자문기구인 국가원로자문회의 부활론을 제기했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반대편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사문화된 제도라며 반발했다. 이 전 총리의 제안 취지는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정부에서 정권을 안정시키자는 것이었다.

과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한 인사는 얼마 전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재미난 화젯거리를 내놓았다.

그가 해준 말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자문위원들은 회의에서 위원회가 미리 써준 쪽지 글만 읽을 수 있었다. 소신 발언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눈밖에 나면 더 이상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현직 관료들과 전문가 출신 자문위원 간에 난상토론도 벌어졌다. 자문위 조언이 국정에 반영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금리인상 조치였다. 정부 출범 당시인 2003년 부동산 안정화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정책 고수로 2년째 집값 잡기가 정권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문재인정부도 집권 9개월째를 맞았다. 그러나 초기 성장통을 피해가진 못했다. 최저임금 사태, 부동산 정책 표류, 가상화폐를 둘러싼 논란 등 각종 정책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혼선 등을 보면서 현장을 살피지 못했다면 자문기구라도 제대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자문기구는 자문만 하는 기구일 뿐이고 취사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다만 철저하게 준비된 정책이 아니고선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의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cerju@fnnews.com 심형준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