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이재용 석방, 항소심 판결을 존중한다

여론눈치보다 법리에 충실.. 삼성도 거듭나는 계기 삼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서울고법은 5일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된 지 353일 만에 석방됐다. 삼성은 오랜 총수 공백을 딛고 경영을 정상화할 기회를 찾았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비교할 때 상식과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1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를 놓고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에 묵시적 청탁이 오갔다고 봤다. 항소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탁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혐의도 무죄로 봤다. 상식적으로 봐도 수조원대 재산가인 이 부회장이 기껏 수십억원을 도피시킬 이유가 없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뒷거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전형적 정경유착 등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1심과 정반대다. 이를 근거로 항소심은 4년 집행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나는 외아들이고, 후계 자리를 놓고 (형제간) 경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제가 왜 뇌물까지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시장에선 꽤 오래 전부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기정사실로 봤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권력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상당 부분 이를 일리 있는 항변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줄곧 법원에 정치색을 빼고 오로지 법리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이재용 재판'에는 어쩔 수 없이 짙은 정치색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정치는 대통령 탄핵.파면이라는 유례 없는 격변기를 보냈다. 재벌 총수들도 국회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나갔다. 그 와중에 불똥이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 튀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상식과 법리에 따라 내린 판단을 존중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사회엔 재벌 경영권 승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특히 젊은층은 이를 불공평하다고 본다. 이 부회장은 "이병철의 손자, 이건희의 아들이 아닌 이재용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나아가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을 늘 염두에 두길 바란다.
삼성전자 주식을 액면분할해 소액투자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로 한 결정은 바람직하다. 지배구조도 투명하게 바꾸는 통큰 결정이 필요하다. 현 지배구조는 누가 봐도 세계 초일류 기업답지 않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