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명절 증후군' 시어머니도 아프다

신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5 06:00

수정 2019.08.25 15:03

시어머니 며느리 모두 아픈 명절, 현명한 관계 맺기는? 
곧 설이다. 이번 설은 대체공휴일이 없어 연휴기간이 비교적 짧다. 하지만 짧은 설 연휴기간을 유독 반기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명절 스트레스 최전방에 서 있는 며느리다.

여성에게 명절의 의미는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 명절은 쉬는 날이지만, 결혼 후 명절은 '노동의 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가고, 못난 조상 만난 덕에 명절 내내 전만 부친다"는 며느리들의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기혼 여성들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가 ‘1만 달러(약 1천만원) 이상의 빚’을 졌을 때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충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종성 교수팀이 기혼남녀 5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혼 여성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 점수는 32.4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1만 달러 이상의 빚'이 주는 스트레스(31점)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일 하는 사람 따로, 쉬는 사람 따로' 지쳐가는 며느리들

명절 때마다 '시월드(시댁과 월드를 합친 신조어)'에서 스트레스 받는 며느리의 사연은 이미 회자된 지 오래다. 일 하는 사람 따로, 쉬는 사람 따로 있는 시댁 위주의 가족문화로 며느리들은 지쳐만 간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명절증후군은 스트레스로 명절 전후 두통, 현기증, 우울증, 불면증 등의 정신적 증상이나 허리, 무릎 통증, 위장장애 등의 육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명절 이후 이혼신청 접수 건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설날·추석 전후 기간에 하루 평균 577건의 이혼신청서가 접수됐다. 1년간 하루 평균 이혼 신청은 298건으로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명절 스트레스'는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로 이어진다. 평소 쌓였던 부부·고부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주부 장혜지(가명·36)씨는 "명절 때 시누이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면서 며느리라고 몸종 부리듯이 부려먹는 시어머니의 태도에 질렸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팔자 늘어지게 먹고, 자고만 반복하는데 '이러려고 결혼했나'란 생각마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아예 시댁에 방문하지 않는 며느리도 있다. 맞벌이 주부는 설 당직 근무를 자처해 회사로 출근한다.

눈 속임용 '가짜 깁스'를 사는 경우도 있다. 가짜 깁스는 연출용 소품으로 팔이나 다리에 끼웠다 뺄 수 있도록 제작됐다. 팔, 다리가 아픈 것처럼 보이게 해 명절음식 준비의 부담감에서 벗어나려는 꼼수다. 며느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명절이면 입술의 색을 없애 최대한 아파보이게 만드는 립스틱도 인기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가짜 깁스'의 모습. 가짜 깁스는 팔, 다리가 아픈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사진=인터넷 쇼핑몰 캡처 화면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가짜 깁스'의 모습. 가짜 깁스는 팔, 다리가 아픈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사진=인터넷 쇼핑몰 캡처 화면

■"며느리만 힘들다고? 나도 힘들어" 스트레스 받는 시어머니

시어머니도 며느리 못지않게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가사노동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며느리와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주부 이영란(가명·58)씨는 "이번 설에 며느리가 회사 당직이 있다고 해서 혼자 설 준비를 해야 한다"며 "솔직히 명절준비를 피하려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 잔소리 하기 싫어서 모른체 했다"고 말했다.

며느리의 불만 섞인 태도에 명절 때마다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도 있다. 주부 최윤정(가명·55)씨는 "며느리에게 집안일을 시키면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어서 저절로 반응을 살피게 된다"며 "며느리 입장을 고려하자니 내가 힘이 들고, 그렇다고 일을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며느리에 비해 시어머니가 명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한 관계자는 "시어머니는 외부로 자식과 며느리를 흉보는 일을 꺼려 속으로 앓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친구와의 대화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며느리와 달리 시어머니는 말할 대상이 적다는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시어머니, 며느리를 비롯해 가족 모두의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인정하기'와 '표현하기' 방법이 있다.


한국가족상담연구소의 한 상담가는 "명절에는 어느 정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필요할 때는 '함께 차례를 준비하자'는 식의 구체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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