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

일제강점기의 '타운하우스' 철도 관사

일제강점기 전국 곳곳 철도교통 요충지에 세워진 철도관사
'철도가족'의 후생복지혜택으로 인기 누려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또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말한다.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절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거나 그들의 통치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장소를 찾아가 과거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 기자 말

▲1927년 용산구 철도관사단지의 배치도/사진=논문 「해방이전 건립된 철도관사의 공급방식과 평면유형 특성에 관한 연구」, 김수영

▲ 1947년 수색역 인근을 촬영한 항공 사진. 사진에서 약 70동의 철도관사가 보인다./사진=국토지리정보원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조선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철도를 까는 일이었다. 경성을 거쳐 평양, 의주를 지나 만주까지 군사와 물자를 보내는데 철도만큼 시급한 일도 없었다.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에는 경원선, 호남선, 전라선, 중앙선, 함북선 등 국토 곳곳에 터널을 뚫고 철로를 깔아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지배의 지렛대로 삼았다.

철도가 깔릴수록 종사원도 늘 수밖에 없다. 일제하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가장 거대한 기관이었는데, 1906년 6월 통감국 철도국 시절에는 5400명이었으나 해방 직전 1945년까지 10만6000여명으로 급증했다.

거대해진 기관만큼 ‘철도가족’끼리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각종 후생복지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그중에서 타 기관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후생복지는 철도 종사원에게 제공되는 주거시설인 철도관사나 철도병원의 의료혜택이다.

경성의 용산, 청량리, 수색이나 부산 초량, 대전, 순천, 평양, 강계, 해주 등 전국 철도 교통 요충지에는 수백 동의 대규모 관사 단지가 조성됐다. 이뿐만아니라 역사의 규모에 따라 중규모 단지, 작은 역에는 소규모 단지를 이뤘다. 역장 관사는 단독 건물로 역과 인접하여 따로 지었다. 이러한 단독주택 주거단지는 요즘으로 치면 '타운 하우스'인 셈으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택 문화였다.

현재 일제강점기 내내 얼마만큼 철도관사가 지어졌는지 알 수는 없다. 오늘날 거의 소멸됐으며 철도관사가 존재했는지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철도관사로 추정되는 수색동의 한 주택/사진=정용부 기자
■ 서울의 마지막 철도관사를 찾아서
서울 지역에 건설된 철도관사 단지는 용산구 한강로동, 중구 순화동, 용산구 효창동, 마포구 서교동, 은평구 수색동,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였다. 이중 용산역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큰 50만평의 부지였다. 이 안에는 철도관사 120동에 철도국, 철도병원, 철도공장, 철도학교 등 주요 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이곳 모두 산업화에 밀려 거의 사라지고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용산 철도병원만 남아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7일 기자는 은평구 수색동 옛 철도관사터를 찾았다. 서울 외곽지역 수색에 남아 있는 철도관사를 찾을 심산이었다. 동네는 재개발 바람이 휩쓸고 간 뒤로 뒤숭숭했다. 특히 수색로 18길 인근 지역은 이미 상당수의 주민이 동네를 떠나면서 빈집이 수두룩했다.

그러다 이 동네에서 38년을 살았다는 주민 김○○씨를 만났다. “이 지역 일대가 철도관사촌은 맞다. 1980년대까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줄로 안다. 옛날에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 나무와 수풀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산을 따라 땅을 개간해 올라가면서 마을이 커진 거다.”

김씨는 과거 수색로2나길에 있었던 관사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빛바랜 흑백사진에서 과거의 모습을 살짝 볼 수 있었다.

의외의 말도 들었다. “이 지역 재개발을 바라는 건 이 동네 사람들보다 오히려 철도 건너 상암동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저 고층 건물에서 바로 보이는 수색동이 낙후해서 자기들이 피해를 본다고…”

수색동 일대는 2005년 수색·증산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으로 지정됐다. '롯데캐슬'아파트가 들어서는 4구역이 지난해 분양을 마치면서 다른 구역도 개발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

골목을 샅샅이 뒤지다 철도관사로 보이는 주택 두어 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모두 비워진 상태로 보였다. 수소문을 위해 인근 집을 두들겼지만 비어 있거나 주민들은 말을 아꼈다.

일제강점기 철도관사는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단지는 가로세로 구획을 잘 나눴고 주택들은 정남향이다. 초창기에 지은 철도노동자 숙소는 막사형의 연와조 목조 가건물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벽돌이나 콘크리트 벽돌로 벽을 올린 목조단층에 시멘트 기와를 얻은 일본 전통가옥양식의 근대화된 형태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의 전통 난방 시설인 온돌을 가미하기도 했다.

▲ (위) 부산시 동래구 낙민동의 철도관사 모습/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 (아래) 의왕시 부곡동의 철도관사 모습/사진=의왕시
■ 남겨진 철도관사로 대박 친 순천시
지난해 7월 전남 순천시청은 소위 ‘대박’을 쳤다. 순천시가 문화체육관광부가 편성한 ‘2005년 관광자원개발사업’에 선정되면서 국고보조금 40억(시비 50억 원 포함해 총 사업비 90억 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순천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업을 해 본 적이 없어"라고 할 만큼 지방 지자체로는 흔치 않은 관광사업 규모였다.

순천시가 다른 지자체를 따돌리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조곡동에 남아 있던 철도관사였다. 순천에는 1930년대 전라선 개통과 동시에 100채에 가까운 철도 마을이 형성됐고 현재 59채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는 이곳에 관사 3채를 사들여 2채는 일본 다다미 방식의 7실 규모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 문을 열었다. 나아가 철도를 소재로 한 전시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철도 공작소, 철도예술실험 센터, 철도 놀이터 등 복합문화시설 ‘철도 팩토리’를 열어 관광객 유치를 꾀한다.

근대의 건축유산을 탈바꿈시킨 사례는 더 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적산 가옥은 ‘보성여관’이 됐다. 부산시나 목포시, 군산시도 이 같은 가치에 주목하고 도심재생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의 근대건축유산이 방치되고 허물어질 동안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관광산업에 새 바람을 불어 넣고 있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