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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그린스펀의 거품 경고와 미국 재정적자

장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2 14:57

수정 2018.02.12 15:39


/사진=파이낸셜뉴스
/사진=파이낸셜뉴스

지난주 글로벌 주식시장은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는 뉴욕 시장이 급락하면서 주요국 주가지수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미국 다우지수가 5.21%, 유로Stoxx 600 5.01% 하락했다. 미국, 유럽 쪽보다 아시아 주식시장 낙폭이 더 컸다. 일본 NIKKEI가 8.13% 급락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9.60%나 빠졌다. 국내 코스피지수는 6.4% 하락한 2363.77로 마감했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빠르게 조정을 받은 것은 통화정책 변화에 발맞춘 금리 상승 때문이었다.

이같은 현상을 금융시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로 인식하는 쪽에선 버블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저가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많지만 그간 심심찮게 제기됐던 주식·채권 버블 논란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 그린스펀의 주식·채권 등 증권시장 거품 주장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지난 1월말 금융시장 거품에 관한 발언을 다시 내놓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31일 한 텔레비전에 나와서 "우리는 주식 거품과 채권 거품 상황을 맞고 있다"면서 자신은 지금은 특히 채권 거품을 우려한다고 했다.

그는 종국적으로 채권 거품이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스펀이 채권시장이 거품을 경고한 데는 재정적자가 큰 원인이었다.

당시 그린스펀은 "우리는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를 운용하기 시작했다"면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사실 그린스펀의 경고는 이번 만이 아니다. 그린스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주가가 급등할 때 심심찮게 주가 거품 등을 경고해 왔다.

오래전인 1990년대엔 이른바 닷컴 버블에 대해 "비이성적 과열"이라면서 거품을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린스펀 자신 역시 부동산 버블을 키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일등공신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듣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린스펀을 2000년대 초중반 주택담보대출이 과도하는 늘어나는 과정을 방치하다가 뒤늦게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으로 인식한다. 즉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핵심 인물로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20년 가량 연준의장을 역임했지만 말년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그린스펀은 여전히 인지도가 높아 그의 발언은 늘상 주목을 받는다. 2월 들어 주가가 급락하다보니 1월 말 그린스펀이 발언이 새삼 주목받기도 했다. 아울러 파월 신임 연준 의장에게 '그린스펀 풋', 혹은 '버냉키 풋'을 기대하기도 한다.

풋옵션이 정해진 가격에 증권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만큼 그린스펀 풋같은 용어는 금리인하 등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켰던 연준 수장들에 대한 '기대감'과 연관된 말이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연준 파월 신임 의장 취임과 함께 주가가 폭락했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그린스펀이나 버냉키를 거론하면서 파월이 주가 안정에 기여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연준은 금리를 올리는 중이며, 파월이 뭔가를 내놓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은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 상황이고 고집스런 트럼프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러는 사이에 주가와 채권가격이 크게 내렸다. 최근 그린스펀 말처럼 거품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미국의 재정부양..금융시장 다시 흥분시킬 개연성
그린스펀이 정책가들이 재정적자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일갈한 가운데 금융시장에선 재정적자가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세율 인하와 재정지출 확대로 미국 정부의 살림살이가 나빠지는 가운데 적극적인(혹은 지나친) 경기부양에 따른 과열로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는 재정정책이 결국 통화정책상의 긴축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하원을 통과한 2년 장기예산안에 서명한 가운데 미국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날 정부의 빚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당파성을 띄지 않는 CRFB(책임연방예산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예산증액으로 미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이자지급을 포함해 4200억달러나 늘어난다. CRFB는 이 법안을 영구화하면 오는 2027년까지 2조달러가 넘는 누적적자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감세로 인한 1조달러와 인프라 지출 1조5000억 달러는 별개다. 결국 미국에선 막대하게 빚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당장은 2017년 6657억달러였던 재정수지 적자가 2018년도에는 8500억달러로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내후년인 2019년에는 1조15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

정부 지출확대에 대해선 상반된 견해가 맞설 수 있다. 예컨대 정부 지출 확대로 경기가 더 탄력을 받아 성장률이 높아지고 세금이 더 들어오면 나라 살림살이가 더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급속한 구축효과로 나타나는 경우 궁극적으로 경기에도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정책이 건전한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물가만 끌어올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인프라 투자 등과 관련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설명에 나서게 된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전 공약집에서 이미 미국의 낡은 공항, 도로, 항만 등을 손보겠다고 공언을 한 상태였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일부 금융사들은 성장률 상향과 함께 금리인상 가속화를 거론하고 있다. 경기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사인 골드만 삭스와 JP 모간은 감세 정책 효과 등으로 성장률이 0.3%p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추정하면서 올해 4차례 정도의 금리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JP 모건은 특히 "올해 3분기 실업률이 50여년 만에 가장 낮은 3.7%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올해와 내년 모두 연준은 금리를 네 차례 가량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고용 호조에 따라 임금과 물가의 상승 압력이 강화돼 연준이 보다 적극적인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JP나 골드만삭스의 네 차례 금리인상 전망은 시장의 평균적인 예상보다 많은 느낌이다. 연준은 일단 3회 인상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며, 얼마 전까지 시장 가격변수 등을 보면 2차례 정도로 보는 시각이 대체로 우세했다.

현대차투자증권의 변준호 연구원은 "미국이 연 4회 금리를 올렸던 94년, 00년, 04년, 05년, 06년과 비교해 볼 때 현재의 경제 성장세, 고용 상황을 양호하지만 물가 상황은 미흡하다"면서 "미국이 연 4회 금리를 올렸던 해에 PCE물가는 월평균 2%를 넘는 수준을 기록했으나 최근 관련지표는 1.7%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연준의 분기 1차례 금리 인상 등을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일단 오는 3월 연준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선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미국 재정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많고 금리를 올리는 시늉을 할수록 경기가 빠르게 둔화될 수 있어 냉정하게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보인다.

은행의 한 채권딜러는 "미국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국채발행 증가, 그리고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최근 주가와 채권가격이 모두 급하게 떨어졌다"면서 "트럼프의 고집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결국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에 속도 조절을 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미국 경기 확장세가 전후 최장기인 10년에 육박하고 있다.
동시에 지금은 금리상승으로 시장과 실물에 동시 충격이 갈 수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 미국의 금리인상이 멕시코 통화위기와 아시아 금융위기의 씨앗이 됐다는 점 등도 떠오른다.
현재 국내 주식과 채권 모두 자신 있게 들고 가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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