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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철강 규제와 트럼프의 보호무역

장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9 14:18

수정 2018.02.19 15:47

사진=파이낸셜뉴스, 포스코 공장
사진=파이낸셜뉴스, 포스코 공장


올해 한국경제의 주요 위험요인 중 하나로 전망기관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거론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보호무역이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트럼프노믹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수출액이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달하는 한국경제가 휘둘릴 수 있다는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설 명절 연휴 기간에 철강에 대한 규제 방침을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16일 무역확대법 232조와 관련한 철강 무역규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 모든 국가의 철강 수입에 대해 최소한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 한국, 중국, 브라질 등 12개국에 대해 최소 53%의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2017년의 100%로 쿼터를 할당하거나 △ 모든 국가의 철강 수입을 2017년의 63%로 쿼터를 할당하는 방안 등이다.

즉 관세를 높이거나 관세와 쿼터(물량제한)를 같이 활용하거나 쿼터를 적극 이용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세가지 권고안에 대하여 4월 11일까지 결정을 해야한다.

■ 미국의 이기주의, 긴장할 수밖에 없는 한국
지난 주 후반 미국 상무부는 철강 수입이 미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담은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철강 수출국에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내세우면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 시점의 철강 수입 규제를 국가 안보와 연계시키는 미국의 보호무역 논리는 놀라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미국같은 세계 최대 강대국은 논리를 왜곡해서라도 자국 이익을 앞세울 수 있다. 이는 '트럼프의 미국' 이후 국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상무부에 무역확장법 232조 부활을 지시하면서 "미국 근로자와 미국산 철강을 위해 싸우겠다.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철강은 외국에 의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밝혀 무역분쟁은 이미 예고됐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 제품이 미국의 안보를 저해하는지 조사해 이를 차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되살아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 질서를 뒤흔들더라도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해선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법조항까지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연휴 기간 전해진 이같은 소식에 이번주 국내 주식시장의 철강주들은 동반 하락하면서 거래를 시작했다. 포스코강판, 휴스틸, 세아제강, 동국제강, 세아베스틸 등 철강주들이 장초반 동반 급락하면서 무역 피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국내 철강의 미국 수출 비중이 11% 정도를 차지하는 철강주들이 움찔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상무부의 조사 이후 한국 정부는 "한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대미 철강 수출도 줄고 있다"고 강변했으나 미국이 한국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미국 상무부는 이번 규제와 관련해 중국 철강제품 수입량, 수출 품목 특성, 대미 수출 증가율 등을 고려해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저가 철강의 국내 유입을 줄여 자국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어 이번 조처는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철강산업이 중국과 꽤 얽혀 있는 한국 역시 피해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예컨대 국내 업체가 중국 강판을 사서 강관을 만든 뒤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 한국도 타격이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대응이 아쉬웠다는 목소리도 있으며, 미국이 '한국 손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도 많다. 예컨대 미국이 정치적 사안과 무역 문제를 교묘하게 연계해 한국 옥죄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 철강이 중국과 얽혀 있어서 제재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독일, 일본, 캐나다 등은 한국과 같은 대우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리와 자국 이익을 앞세운 트럼프 정부는 이미 지난달 수입산 세탁기,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기도 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에 365만톤의 철강을 수출해 수출량 기준 3위에 올랐다. 미국이 내세운 2011년 대비 증가비율도 42%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지금도 적지 않은 관세를 물고 있는 국내 철강업체들은 만약 추가관세 53%를 적용받으면 관세율이 100%를 넘길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10위권에 해당하는 무역 적자국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의 무역에서 200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입었지만 일본에 대해선 600억 달러가 훨씬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한국으로선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에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증권사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 문제를 이념적으로 보거나 한미 관계 악화 측면에서 보는 정치적 시각을 경계한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지속적으로 부유한 한국이 미국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취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다른 나라보다 가시적 성과를 내기가 용이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 철강 규제, 증권가는 영향 제한적일 것으로 봐
증권업계에선 미국의 제재가 철강 관련 주식에 단기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이 많다. 다만 불확실성이 커 경계감을 늦추기는 어렵다.

미국의 무역규제로 한국 철강업체들의 미국 수출 비중은 이미 낮아져 있다. 특히 강관 쪽을 제외하고 그 영향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지난해 기준 미국으로 수출한 물량 356만톤은 한국의 철강 전체 수출의 11%이며 한국 철강 생산량의 4% 수준이다. 특히 강관을 제외할 경우 한국의 미국향 철강 수출은 2015년 291만톤에서 2017년 143만톤으로 이미 크게 줄었다. 반면 강관 수출은 같은 기간 110만톤에서 210만톤으로 크게 늘었다.

현대차투자증권의 박현욱 연구원은 "미국의 무역확대법 232조가 발동이 되더라도 강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이미 미국향 비중이 낮아져 있어 대부분의 한국 철강업체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 상무부의 발표로 미국 US스틸, NUCOR의 주가는 지난 금요일 각각 14%, 4% 상승했고 미국 이외 철강업체들에게는 단기적으로 투자심리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2002년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 사례에 비춰봤을 때 결국 미국 철강 내수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글로벌 철강가격 상승을 견인할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철강 순수입은 2015년 2607만톤, 2017년 2479만톤으로 연간 2500만톤 내외 수준이었다. 미국의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 개별 업체, 그리고 글로벌 철강업계에 미칠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증권사에선 일단 이 사안이 국내 철강업계, 그리고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삼성증권의 백재승 연구원은 "한국을 포함한 12개국가 철강제품에 53%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이 채택되면 피해가 클 수 있으나 이미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대형 철강업체들의 대미 수출량은 2016년 8월 주요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이후 감소해 왔다"면서 "미국의 제재가 미칠 악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그는 "다만 미국 익스포저가 확대된 세아제강 등 강관업체들에 대한 주가 센티멘트는 악화가 예상된다"고 풀이했다.

미래에셋대우의 이재광 연구원은 "최종안이 나오지 않아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긴 어렵지만 미국의 조처는 강관을 제외한 제품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난해 강관 외 제품의 미국향 수출은 생산량의 2.3%로 낮다. 강관 외 제품은 최악의 경우 미국향 수출이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내수 판매 확대 및 미국외 수출 증가로 일정부문 상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강관의 경우 미국향 수출이 생산량의 35.8%로 미국 의존도가 높아 향후 최종안에 따라 영향이 클 것"이라며 "다만 강관사별로 영향이 다를 것인데, 세아제강의 경우 이미 현저하게 낮은 관세율을 차등 적용 받고 있으며 미국내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어 무역규제 강화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아직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최종결정이 나오지 않아 미국의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떤 시나리오가 적용되느냐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의 방민진 연구원은 "미국이 만약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최소 24%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수입산 단가를 미국 내수 단가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며 "이는 제한적 수출 경쟁력 훼손과 함께 수출단가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한국이 크게 우려할 사안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방 연구원은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12개국을 대상으로 53%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국내의 타격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포스코의 경우 미국 수출이 이미 전체 매출의 3% 미만으로 축소돼 있어 직접 타격이 제한적이나 미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강관업계는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 미국 보호무역주의, 뾰족한 수 찾기 쉽지 않은데...

미국발 철강 규제 우려와 미국 보호주의 강화로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커지고 있다.

비단 철강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한국 등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한국 경제의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혀왔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세계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비관세 장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비관세 조치엔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규제조치, 위생검역이나 기술장벽과 같은 규제적 조치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를 당하는 대표적인 나라였다. 한국은 특히 철강, 화확제품 등에서 보복 조처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던 게 사실이다.

한국은행은 트럼프 당선 이후 낸 보고서에서 "2015년중 통관수출의 0.5%(24억달러), 2016년중 0.7% 정도가 보호무역에 따른 직간접 수출 차질규모"라며 "보호무역 강화추세가 지속되면 2020년까지 통관수출의 0.8% 내외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은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의 노력을 당부하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증권사의 한 분석가는 "결국 현실적으로 미국이 계속 자국 우선주의로 나온다면 기업 입장에선 품목과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는 수밖에 없으며, 고품질 제품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무역규제에 따른 피해 최소화를 위해 협상력을 높이는 한편 이 문제로 피해를 보는 다른 나라와 협력해 WTO에 제소하는 등 공조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통위 이후 공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 "앞으로 세계경제 성장세는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와 미국의 정책방향,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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