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학생 그림자' 밟는게 두려워진 교육현장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6 17:22

수정 2018.02.26 17:22

[차장칼럼] '학생 그림자' 밟는게 두려워진 교육현장

"학부모와 학생, 교사가 참여하는 학생회에서 염색을 허용하지 않는 교칙을 만들어도 염색을 하거나 피어싱을 한 학생을 나무라면 학생이 교육당국에 페이스북 등 SNS로 항의 글을 올려요. 며칠 후 당국에서 인권침해하지 말라고 공문 내려오고...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선생님들 대다수가 생활지도를 포기한 지 오래됐어요."

최근 취재 과정에서 만난 15년차 고교 교사 A씨의 말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유.초.중.고 교사 등 119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8.6%가 과거보다 학생생활지도가 '어려워졌다'고 응답했다. 교사들은 학생지도가 어려워진 근본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와 아동복지법 일부 조항을 문제 삼는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과 전북 등 4개 지역에서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 대한 체벌 관행을 없애는 데 상당한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인성을 완성해 나갈 시기에 지나치게 인권을 강조하며 학생에게 자율권을 부여한 탓에 인성교육의 포기와 교권 침해라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복장과 두발 등 용모, 자율학습과 방과후학교 수강의 자율권을 허용하고 있다.
학생은 반성, 서약 등의 진술을 강요받지 않으며 개인수첩 등 사적인 기록물 열람을 거부할 권리 등도 갖는다.

문제는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이 없다보니 체벌이 아닌 일상적 훈육도 자칫 학생 인권 침해로 간주될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이 소지하기에 부적절한 술, 담배 등을 지도하기 위한 소지품 검사 등이 사라졌고 수업을 방해해도 수업권 침해를 이유로 복도나 교실 뒤편에 나가 서 있으라는 지시도 하지 못한다. 교사들은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학생의 편식습관 지도과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만 18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에게 적용되는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아이를 꾸짖을 때는 한 번만 따끔하게 꾸짖으라"는 탈무드의 격언도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불법인 셈이다.


여기에 단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학생 체벌로 5만원 이상의 벌금형만 나오면 형량을 세부적으로 따지지 않고 무조건 10년간 초.중.고교와 학원 등 유관기관에 취업을 제한한 아동복지법 규정도 교사의 인성교육과 생활지도를 더욱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돼버렸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는 10대 범죄의 근본 원인을 인성교육의 실종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학생들의 인권과 교권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차원에서 교사의 훈육 범위를 지금보다 폭넓게 인정해주는 것이 공교육 붕괴를 막는 지름길이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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