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GM사태, 8년 전 교훈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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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해도 독자생존" 공수표.. 워크아웃.법정관리가 해법
정치는 빠지고 법이 나서야

대기업 특혜 말만 나오면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하는 짓은 딴판이다. 대기업에 특혜를 주지 못해 안달이다. 누굴까. 정치인들이다. 정부도 여기 편승한다. 3년 전 대우조선해양에 조 단위 세금을 넣을 때 그랬다. 지금은 한국GM에 세금을 부으려 한다. 특혜 이야기는 쏙 들어간다. 선거가 닥치면 이 증상이 더 심해진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는 데도 일등이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법을 깔보는지 보자. 기업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그래서 회사를 어떻게 만들고 해산할지 시시콜콜 법으로 정했다. 상법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창업만큼 퇴출도 중요하다. 그래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이 따로 있다. 흔히 법정관리라 부르는 기업회생절차는 이 법을 따른다. 법정관리로 가면 회사는 존속과 청산의 갈림길에 선다. 결정권은 판사가 쥔다.

파산 관련 법이 야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법정관리는 최후 수단이다. 그 전에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할 수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가 터지자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시한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만들었다. 일종의 완충장치다. 이 시한은 수차례 연장 끝에 올 6월까지 유효하다. 법정관리만큼은 아니지만, 워크아웃 역시 대수술이다. 경영권 내놓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야 한다. 다만 수술을 받는 대신 회사는 살린다.

한국GM은 적자투성이다. 군산공장은 폐쇄된다. 철수할 마음이 없다면 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법정관리로 가는 게 맞다. 그게 게임의 규칙이다. 하지만 노련한 미국 GM 본사는 국회를 찔렀고, 전술은 적중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은 한국GM에 세금을 넣으라고 성화다. 누구도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입에 담지 않는다. 일자리 프레임에 갇힌 문재인정부도 GM이 방을 뺄까봐 안절부절못한다. 지원조건을 내걸었지만 여론을 의식한 시늉일 뿐이다. 지원은 굳은자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8년 전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할 판이다. 2010년 12월 8일 산업은행은 'GM대우 장기발전 최종 합의안'을 발표했다. 당시 김영기 수석부행장은 "GM대우는 미 GM이 떠나더라도 개발기술을 이전받아 자체적으로 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도 산은과 정부는 GM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합의안을 내놨다. 지금 보니 헛물만 켰다. 독자생존은 개뿔.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려 한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준법 선례를 세우자. 다름아닌 GM 본사가 모델이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로기 상태인 GM에 미국 파산법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 석달 뒤인 6월 GM은 뉴욕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본격적인 구제금융은 그 뒤에 이뤄졌다. 구조조정은 법에 따라 착착 이뤄졌고, GM은 부활했다.

또 당하지 말자.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법을 왜 깡그리 무시하나. 워크아웃이든 법정관리든 한국GM이 법 절차를 밟게 놔둬라. 지원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정치권을 기웃대는 회사일수록 노사가 밤낮으로 싸우는 곳이 많다.
왜 그런 회사를 세금으로 살려야 하나. 기우뚱대는 회사를 바로 세우려면 노사 모두 그만한 땀과 피를 흘려야 한다. 뻔질나게 국회를 들락거려도 땡전 한 푼 없다는 걸 알게 하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법만 지키면 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