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올해로 만 25세, 늠름한 ‘청년’이 된 택배산업

최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1 13:23

수정 2018.03.01 13:23


연도별 택배 물동량
(천개)
연도 개수
1998년 57,948
1999년 79,100
2000년 110,339
2001년 202,688
2002년 301,432
2003년 343,322
2004년 404,689
2005년 525,503
2006년 657,994
2007년 799,513
2008년 891,884
2009년 1,079,660
2010년 1,198,747
2011년 1,299,058
2012년 1,405,978
2013년 1,509,309
2014년 1,623,247
2015년 1,815,960
2016년 2,047,013
2017년 2,319,456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왔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반가워하는 말이다. 이번 주말 동창모임에 입고 나갈 옷과 구두를 구매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반찬을 주문하는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택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홈쇼핑,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이 급속히 발전하고 결제 방법이 간단해지면서 한 통의 전화로,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국내 택배 물량은 1992년 1000만 상자 수준에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23억 상자를 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만 25세’. 택배의 성장사를 살펴보자.

■1992년 공식적으로 출사표 던진 ‘택배’…1962년에 비슷한 형태 나타난 적 있어
국내 최초의 택배는 1992년 한진그룹의 모기업인 ㈜한진이 파발마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현재와 유사한 형태의 택배서비스는 그 이전에 있었다.

지난 1962년 2월경,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현 CJ대한통운의 전신)가 서울과 부산에 중앙하급소를 개설해 수하물과 이삿짐 등 화물운송과 일시보관 등 업무를 개시했는데, 철도소화물운송의 연계서비스로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다.

1992년 한진의 출사표에 이어 1993년에는 CJ대한통운이 대한통운특송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참여했다. 그리고 1994년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택배(현 롯데글로벌로지스), 1999년 CJ그룹 계열의 CJ GLS, 2000년에는 우체국택배가 그 뒤를 이었다.

초창기에는 택배를 신청하면 2~3일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전국적으로 터미널이 별로 없다 보니 지역에 따라 4~5일씩 걸리기도 했다. 기업들이 본사와 지점간 홍보용 판촉물을 발송하거나 떨어져 사는 가족, 지인간 소규모 택배를 주고 받는 것이 주를 이뤘다.

■홈쇼핑, 온라인몰 등 新유통 채널 확대…택배산업의 폭발적 성장
택배산업은 2000년대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 구매에서 홈쇼핑 및 온라인 구매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택배 물량이 늘었다. 1999년 7900만 상자 수준이던 국내 택배량은 2000년 1억 1000만 상자, 2001년 2억 상자, 2003년 3억 상자 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택배업체들은 전국 물량을 1차로 분류하는 대형 허브 터미널과 고객 배송지별로 분류하는 지역 단위 서브 터미널들을 확장해 나갔다. 물량 처리 능력과 배송 서비스 질이 높아지면서 유통업체들과 고객들의 택배 수요가 더욱 증가했다. ‘신유통 채널 확대 → 물량 증가 → 택배산업 발달 → 신유통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택배 물량이 증가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택배업의 일자리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IMF 경제 위기로 양산된 실직자와 퇴직자들이 대거 택배산업으로 유입됐다.

당시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은 후 프랜차이즈산업 전선으로 뛰어 들었는데, 1년도 채 안돼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초기에 사업자 보호기준이 모호했고, 인기있는 업종의 경우 너도 나도 사업자가 몰리다 보니 출혈경쟁으로 폐업이 속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사업자 택배기사가 주목을 받았다. 사업 초기에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비용이 필요한 가맹사업과 달리, 택배기사는 1000만원 상당의 1t 트럭 1대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일자리가 지속되고 월소득이 안정적으로 발생한다는 점, 자신이 일한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 개인사업자로서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는 점 등 다양한 이유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회사 소속의 직영 택배기사들 조차도 퇴사 후 개인사업자 택배기사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건설교통부도 택배기사 유입을 도모했다. 1997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령을 개정해 영업용 번호판 발급을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면서 택배 차량이 급증했다. 이렇게 택배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택배기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2004년 정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계기로 화물운송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꿨다. 그러나 택배의 경우,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차량으로 운송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택배업계는 별도의 택배법이라도 제정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여전히 관련 법령은 제정되지 않았다.

■ 사업자와 근로자 사이에 서 있는 ‘특수고용직’ 택배기사
1990년대 이후 산업환경이 변하고 경제 위기가 겪으면서 고용 구조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비독립적인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며 근로 방법, 근로 시간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특수고용직(특고직)’이 확산됐다. 특고직이란 근로자와 사업자의 중간영역에 해당하는 형태로,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계약 형식은 사업주와 도급계약으로 일을 하고, 개인적으로 모집, 판매, 배달, 운송 등을 통해 고객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을 한만큼 소득을 얻는 형태를 말한다. 특고직은 이런 근로자와 사업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면서 양측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형태다.

2000년 이후 택배산업의 급성장으로 택배기사가 늘어나고 독자적인 운영체계를 갖춰가면서 택배기사는 자연스럽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됐다.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택배사업 영역에서 근로를 수행(근로자)하지만, 독립적인 배송, 영업 방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사업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많이 배송하고 높은 수입을 올리거나, 적당히 배송하고 평균 수입을 올리는 등 근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회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택배기사를 특수고용직화 했다는 것은 오해다.

■ 만 25년 맞은 오늘날의 택배…1년 23억개, 월수입 1000만원 택배기사도 등장
택배시장은 매년 두 자리수 성장율을 보이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 2017년 국내 택배 총물동량은 무려 23억 상자. 15세 이상 국민(4385만명) 1인당 연간 52개, 매주 1개 이상의 택배를 받는 셈이다. 택배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면서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가장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중소상공인들의 중요한 사업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택배산업은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사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택배기사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1인당 취급량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 택배사의 경우 지난해 택배기사의 평균 월수입이 550만원에 이르렀고 700만원 이상인 비율이 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물량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 부부, 부자, 형제 등 가족단위 형태가 자연스레 발생했고, 이들 가족 수입은 월 1000만원을 웃돈다.

일반적으로 통신비, 유류비, 세금 등의 제반 비용은 월 150만원 수준이다. 550만원의 총수입을 거둔 택배기사는 약 400만원 정도의 순수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랫 동안 택배사업을 영위하거나 가족까지 함께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택배기사는 국민 ‘영웅’이 되고 있다.

전국에 있는 택배기사들이 매일 지역 곳곳을 다니다 보니, 도로 갈라짐, 파손된 공공기물 등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해 신고한다. 또 장마철 불어난 하천에서 정신을 잃은 아이를 구하고, 화재가 발생한 집에 들어가 불을 진압하는 등 국민 영웅으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배송 서비스를 넘어 국민안전지킴이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청년이 되면서 택배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택배기사들이 설립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설립신고필증을 발급함으로써 이들의 노조 활동을 정식 허가했다. 따라서 택배기사들은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의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임금, 근로시간, 휴가 등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는 인정 받지 못했다. 제대로 된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모두에서 근로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노조법만 인정받으면서 택배기사들의 권리는 반쪽짜리 근로자가 된 셈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택배기사들의 처우개선과 근로조건에 대한 이슈가 생기고 있다.

다수의 택배기사들은 근로자로 인정이 될 경우 개인사업자가 받는 3.3%의 소득세 대신 6~40%의 근로소득세를 부과 받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또한 4대보험 의무가입으로 세율도 높아지고, 개인별 급여가 의무적으로 공개된다. 고유가로 인한 택배기사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국토부가 지급하던 유가보조금도 받지 못한다. 또한 일부의 택배기사는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만 대다수는 개인사업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택배기사들 사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도 택배 물동량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택배기사에 대한 국민적 인식도 변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택배는 ‘짐’이 아니라 ‘선물’과 같은 존재다.
고소득을 올리는 택배기사가 지금보다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택배업에 종사해 가까운 미래에는 택배기사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히길 기대해 본다.

yutoo@fnnews.com 최영희 중소기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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