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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디지털 주권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4 17:04

수정 2018.03.04 17:04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한때 애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2015년 말 캘리포니아주 복지시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때다. 총기난사범이 테러단체와 공모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아이폰 '잠금해제'만 풀면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FBI의 협조 요구에 애플은 꿈쩍 안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결국 FBI는 이스라엘 보안업체에 100만달러를 넘게 내고 아이폰을 열었다. 일개 기업이 자국 최고 수사기관에 맞선 배짱이 놀랍다.

그런 애플도 중국에 백기를 들었다. 애플은 지난달 중국 고객 데이터를 담은 클라우드 계정 정보를 국영 서버로 옮기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해외 기업들에 자국민 정보를 담은 계정을 중국에 두라고 종용해왔다. 2016년 만든 '네트워크안전법'이 근거다.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이 있지만 사실상 공산당 검열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FBI도 무시했던 애플이다. 하지만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거부하지 못했다. 중국이 시장을 무기로 데이터 주권을 장악하는 모양새다.

미국도 만만찮다. 지난 1월 AT&T는 중국 스마트폰업체 화웨이의 단말기를 출시하려다 돌연 취소했다. 안보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FBI는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국민은 화웨이와 ZTE 등 중국업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 육군도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인 중국 DJI의 드론 사용을 금지했다. 군은 DJI 드론을 날리면 주요 데이터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진국들은 이미 데이터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배수진을 쳤다. 유럽연합도 이달 상반기 해외서버로 건너간 자신의 정보가 침해당하면 언제든 소송을 제기토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데이터가 국경을 넘나드는 것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국내 데이터를 국외로 옮겨도 이를 막을 뚜렷한 규정이 없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돈을 벌고도 세금을 내지 않아 국내 포털업체들이 역차별을 호소한다. 막대한 데이터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미래산업에 필수요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주권 정책을 짜야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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