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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맹목적 여론에 휘둘리는 국민청원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7 17:38

수정 2018.03.07 17:53

[차장칼럼]맹목적 여론에 휘둘리는 국민청원


아무리 곱씹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에 대해 기어코 청와대가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북핵 문제와 글로벌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말이다. 안보와 외교에 국정을 집중하기도 모자랄 판에 여자 팀추월 대표팀의 팀워크 문제까지 직접 챙겨보겠다고 하니 청와대의 오지랖도 대단하다.

물론 청와대는 국민청원이라는 명분이 있다. 지난달 19일 여자 팀추월 8강전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빙상연맹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무려 60만명을 넘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국민청원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나 관련 정부기관이 의무적으로 답변하거나 조치를 취하는 룰을 만들었다. 팀추월 사건 이후 김 선수와 박 선수는 자신들의 경솔했던 행동과 인터뷰에 대해 국민 앞에서 통렬히 반성했다. 스물다섯살인 김보름 선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최악의 여론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조국에 매스스타트 첫 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관중과 국민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의 큰절까지 올렸다. 그러고도 시종일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두 선수에게 돌아온 건 국가 최고권력기관의 진상조사다. 두 선수에게 큰 반감을 가졌던 주변 사람 중에도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문 정부의 국민청원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의 '도편추방제(오스트라키스모스)'를 연상케 한다. 기원전 487년 클레이스테네스는 전 집권자 페이시스트라토스 같은 참주(독재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도편추방제를 도입했다. 아테네 시민들이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 조각에 적고,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을 국외로 10년간 추방했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직접민주주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도편추방제는 향후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대표적으로 스파르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다가 반대파에게 추방당한 테미스토클레스 등이 도편추방제의 폐단에 희생됐다. 어이없는 상황들도 벌어졌다. 당시 기록을 보면 아테네 시민 가운데 '못생겨서' '그냥 기분이 나빠서' '친구의 권유로' 등 비민주적·비이성적 이유로 특정 정치인을 숙청하는 데 동참하는 일이 많았다. 정작 권력자인 페리클레스는 도편추방제를 활용해 정적을 제거하고 30년간 독재정치를 하기도 했다. 결국 70년을 이어진 도편추방제는 기원전 416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히페르볼루스가 추방된 것을 마지막으로 폐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유래된 영어 'Ostracism'은 도편추방이라는 본래 뜻 외에도 '왕따' '소외' 등을 표현한다. 문 정부의 국민청원제가 도편추방제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맹목적 여론에 휘둘리는 태생적 문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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