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동통신 동물원' 속 알뜰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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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 담당자를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동물원에 사자와 호랑이만 있다면 사람들이 동물원에 올까?

동물원에 사자와 호랑이 외에 말이나 사슴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도 더 몰리고, 동물원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정책 담당자가 동물원에 비유한 것은 국내 이동통신시장이다. 물론 사자와 호랑이는 이동통신 3사를 의미한다. 나머지 말과 사슴은 알뜰폰 사업자를 빗댄 것이다. 이통 3사와 알뜰폰이 건전한 경쟁을 펼쳐나간다면 국내 이통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희망이 동물원 이야기에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동물원을 구성하는 한 축인 알뜰폰이 더 이상 사업을 하지 못하겠다고 곡소리를 내고 있다.

동물원을 관리하는 과기정통부가 각종 통신요금 인하 카드를 꺼내들면서 말과 사슴의 서식지를 망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알뜰폰 업체들은 대표적으로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당장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정부 입장에선 자신들이 직접 동물원에 데려온 말과 사슴이 죽게 놔둘 수 없다. 이에 따라 일단 보편요금제를 수용하고 이후에 알뜰폰 지원을 위한 대책을 내놓겠다며 달래고 있다. 동물원 관리가 처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이처럼 동물원 관리에 문제도 있지만 말과 사슴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이치다. 말과 사슴이 치열하게 생존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사자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관리자가 감시하고 도와줘도 자연의 법칙까지 거스를 수는 없다.

알뜰폰도 마찬가지다. 망도매대가 인하나 전파사용료 면제 등 매번 'SOS'(구조신호)만 보낼 게 아니라 본원적 경쟁력부터 갖춰야 한다. 시설투자도 하고 이통사가 만들지 못하는 특화서비스로 먼저 승부를 본 다음 어려운 점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알뜰폰은 최소한의 설비투자나 특화서비스 개발은 뒷전인 채 SOS만 외치고 있다.


최근 알뜰폰 사업자들이 위기를 극복하자며 비상대책반을 꾸렸다. 앞으로 비상대책반이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기존에 주장하던 내용만 되풀이할 거라면 굳이 시간을 쪼개서 만날 이유는 없다. 투자를 통해 스스로 서비스 경쟁력을 키우고, 동물원의 구성원으로 건전한 경쟁이 가능한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