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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게임중독, 질병으로 분류" 정신의학전문가들 이견 쏟아내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9 17:32

수정 2018.03.09 17:32

콘텐츠진흥원 토론회 개최 "내성.금단현상 규명 안돼"
"게임으로 뇌 기능 향상 긍정적인 부분 간과해"
한덕현 중앙대학교 교수가 9일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WHO의 게임중독 질병화에 대해 근거가 빈약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교수가 9일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WHO의 게임중독 질병화에 대해 근거가 빈약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으로 인한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학계 전문가들은 질병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도 게임중독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WHO가 실체가 불분명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9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DSM-5에서도 여전히 인터넷 게임은 정식질환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특히 내성과 금단증상 등이 수반돼야 중독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 게임중독의 경우 이 부분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 교수는 "WHO가 제시한 게임 중독의 진단 기준에도 내성과 금단증상이 빠져 있어 전세계 연구자들도 혼돈에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옥스포드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스톡홀름대학교, 시드니대학교 등 세계적인 권위의 정신 건강 전문가와 사회 과학자, 각국 연구 센터 및 대학 교수진 36명은 WHO의 행보에 반대한다는 논문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연구진 간에도 게임 장애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명확한 과학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질병 분류 시스템 상 새로운 질환을 공식화하기 이전에 중독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돼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게임포비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이를 두려워하는 기존 미디어들이 공포감을 형성하며 이를 배척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게임포비아가 만들어낸 것이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라며 "셧다운제에 이어 이번에 나온 게임 질병 분류화 움직임은 셧다운제로 게임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플레이가 노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뇌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는 것이다. 또 온라인게임을 통해 에이즈 치료약 개발에 도전한 사례도 있다.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포비아는 사회문제의 원인을 쉽게 찾고 싶어하는 정치인이나 교육과 건강의 분명한 적의 존재가 필요한 교사나 학부모, 지속적인 환자가 필요한 의사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아이들이 게임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하니, 조만간 게임이 아니라 유튜브를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토론회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한편 WHO는 오는 5월 열리는 '국제질병분류기호 개정(ICD-11)'에서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전세계 게임관련 협단체와 학계에서 반대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문화연대, 게임개발자연대 등이 공동 성명을 내고 개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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