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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남자들이 토라졌다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2 16:56

수정 2018.03.12 16:56

[차장칼럼] 남자들이 토라졌다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얼마 전 이런 글이 올라왔다. 어떤 회사에서 남자와 여직원들의 자리배치를 변경해 남자와 여자들의 구역을 나눴다는 것이다. 직장 내 미투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성희롱 문제가 도마에 오르니까,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이런 극단적 방법을 취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글의 내용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처음에는 여직원들도 좋아했는데,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남자 직원이 옆에 없으니 슬슬 불편해하더니, 나중에는 여직원끼리도 기혼과 미혼으로 그룹이 나뉘어서 결국 사이가 더 나빠지더라는 것이다.

실제 사례인지 아닌지는 글쓴이만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바로 '펜스룰'에 대한 것이다.
최근 들어 미투운동에 대한 반작용쯤으로 남성들 사이에서는 성희롱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펜스룰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펜스룰은 조직 내에서 남성들이 먼저 여성과의 교류를 전면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밥도 같이 안 먹고, 회식은 따로 하고, 업무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마주치지 않도록 구분 짓자는 것이다.

"언제 당할지 모르니까 아예 안 보고 사는 게 상책" "그러니까 펜스룰이 답이야" 같은 푸념은 요즘 남자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는 한두 번 꼭 등장하는 화두다. 펜스룰의 유례는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지난 2002년 인디애나주 주지사로 있을 무렵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다른 여성과는 절대 단둘이 식사 자리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앞서 얘기한 게시물은 커뮤니티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댓글들 대부분이 해당 회사 여직원들을 은근히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펜스룰을 주장하는 상당수 남성의 속내는 이렇다. 아예 안 보고 살면 그만이라는 '토라짐'에다, 그래봐야 결국 여자들이 더 불편할 것이라는 일종의 '으름장'을 함께 담고 있다.

금융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신입사원 시절 영업점에서 근무했는데, 야유회를 가면 나이 지긋한 누님들이 고생 많다며 자신의 엉덩이를 불이 나게 토닥였다는 것이다. 성별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큰일날 이야기였지만, 자신은 남자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직 내 성희롱은 결국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권력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사방에서 솔직한 고백들이 쏟아지고 있다. 나는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며 유별나게 굴 것도 없지만 내심 불편해할 필요도 없다.
미투운동은 젠더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안승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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