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직장내 괴롭힘 이대로 안된다](下)정치권 말로만 대책 필요?.. 법안 통과는 0건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3 15:07

수정 2018.03.13 15:46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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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체의 대리 임모씨(34)는 매달 1번씩 무료 법률 상담소를 찾아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 한다. 그는 1년 전 상사와 말다툼 후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상혁 한국노총 노무사는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 상담을 받지만 정답을 말해주지 못해 난감할 때가 많다"며 “사실상 괴롭힘은 처벌이 어려운 걸 알고 있으면서도 위로받기 위해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직장 괴롭힘 근절..정치권 분주
직장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구제가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설 연휴 대학병원 신입 간호사 박모씨(27)가 사망한 배경에 괴롭힘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치권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현실을 법을 통해 바로잡자는 것이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직장 괴롭힘 방지’ 법안은 4건이다. 2016년 이인영·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중오 전 민중당 의원이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으로 1건씩 발의했다.

올해 들어서는 특별법 제정이 대세다. 가해자 처벌, 예방, 사후 구제 등을 한 데 모았다. 이달 2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직장 괴롭힘 방지 특별법을 최초 발의했으며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달 중 발의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괴롭힘이 사회적 문제로 커지면서 특별법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의원은 법률안에서 괴롭힘을 ‘다른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법안에는 △예방교육 △가해자 징계, 근무장소 변경 또는 유급휴직 △피해자에 불리한 조치 금지 등이 담겨 있다. 다른 법안도 가해행위 중지, 피해자 구제 등을 포함하며 주로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법안 통과가 1건도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대 국회에서도 괴롭힘 방지 법안이 5건 가량 발의된 후 모두 폐기됐다.

발의 이후 논의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이인영·한정애 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의 200쪽에 달하는 속기록을 살펴보면 해당 법안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1차례도 없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환노위에서 논의할 법률안이 500개가 넘는데다 최근까지 근로시간 단축 등 이슈가 많아 후순위로 밀렸다”고 말했다. 이번주 환노위에서 발의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괴롭힘 방지법이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처벌 능사 아니라 조정장치 필요" 지적도
일각에서는 직장 괴롭힘 방지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성과주의 문화가 자리잡은 상태에서 상사-부하간 법적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법률안 도입에 적극 찬성하면서도 세부안 마련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법률안을 통해 산업안전 보호를 정신 분야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의 성과주의 문화로 인한 직장 괴롭힘이 심각한 상황에서 특별법 도입이 해결책일 수 있다"며 "현행 산업안전법률이 육체적 노동에 초점을 두는데 직장 괴롭힘 등 감정 노동도 산업 안전 측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안 내용을 손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단순히 ‘처벌’보다는 가해자-피해자 간 조정을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 가해자 처벌, 피해 보상 마련 뿐 아니라 피해자가 예전처럼 평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당사자 조정을 통해 이 정도면 용서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일이 가능하다는 등의 판단을 법원이 할 수 있도록 조정기구 마련 내용이 입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전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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