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채용비리가 관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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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라면서 사실은 특채 관행이라고 봐줄 수 없어 오히려 가중처벌이 마땅


"임원추천제가 있어서 그×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한 뒤 나머지 자리를 놓고 백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경쟁했다고 하네요." "아∼ 그랬으니까 그토록 열공한 내가 떨어진 거구나." "나쁜 생각이지만 나도 임원 한 사람만 알았다면 붙었을 텐데." "아니, 이렇게 불공정한 은행이라면 차라리 떨어진게 나아."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하나은행 채용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 때문에 물러나던 날 SNS에 올라온 내용이다. 채용비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나눈 대화인 듯하다. 최 전 원장은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인사담당 임원에게 지인의 아들을 추천했다. 해당 지원자는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 전 원장은 "추천은 했지만 관행일 뿐 채용비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상한 해명이다. 명백한 채용비리를 채용비리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관행은 임원추천제다. 직원을 뽑을 때 임원에게 추천권을 주고, 추천받은 지원자에게는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상당수 은행과 대기업들이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제도를 운영해왔다고 한다. 은행과 기업들은 이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행인데 법의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라는 식이다.

기업들은 내가 쓸 사람을 내 마음대로 뽑겠다는데 웬 간섭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직원을 뽑는 것은 기업의 고유권한이다. 그렇다 해도 공채는 다르다. 모든 요건과 절차를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람을 뽑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는 채용권 침해와는 별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특채를 하면 된다. 공채를 하겠다고 모집공고를 내고서 뒤로는 임원들에게 추천권을 주어 특혜를 인정하는 것은 위장 공채다. 채용권이 기업의 고유권한이라 해도 지원자를 속이는 행위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나의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공채에서 임원추천제는 명백한 불법이다. 추천받지 못한 지원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며 평등권 침해다. 그럼에도 사법당국의 묵인 속에 불법이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관행이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다음 사람도 불법을 저지르고 들통 나면 관행을 핑계 대며 법망을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우리 사회는 불법을 저질러도 관행이란 이름으로 단죄받지 않을 특권을 폭넓게 인정해온 것이 아닌가.

채용비리는 입시비리와 본질이 같다. 떨어질 사람 끌어올려 합격시키고 대신 합격권에 있는 누군가를 끌어내려 떨어트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잣대는 달랐다. 입시비리는 사회 기본질서를 무너트리는 중대한 범죄로 보고 무겁게 처벌했지만 채용비리를 엄벌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채용비리 엄단을 약속했지만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관행이었음을 이유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며 면죄부를 주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칠 것이다.

다수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해 관행이 됐다는 이유로 불법을 정상참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내 생각은 반대다. 오히려 가중처벌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로 인한 피해자도 많을 것이다. 침해된 권익이 광범위할수록 그것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더 무겁다. 사법당국은 가해자에게만 너그럽고 피해자는 외면해오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기자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