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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유럽 등 각국 가상화폐 정책 다듬기 본격화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5 19:37

수정 2018.03.25 21:23

규제 아니면 허용, 극단적 선택 아닌 적절한 규제 필요
美.日 "투자자 보호.규제 강화".. 韓 "규제보단 정상적 거래 지원"
가상화폐에 대한 지나친 규제.. 국부유출.기술발전 저해 가능성
규제.허용 조화로운 정책 필요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최근 한풀 꺾이면서 진정세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초기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가상화폐에 대해 일반 투자자들이나 각국 정부의 시선이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산업과 화폐제도를 심도있게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기열풍이 진정되고 각국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가상화폐 거래량도 크게 줄었다.

25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달들어 비트코인 거래량은 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에 육박했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불확실성에 가격도 널뛰기다.
한때 7000달러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86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냐, 허용이냐의 양극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각국 정부는 올해 들어 적절한 규제를 통해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연합(EU)도 가상화폐 규제에 동조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가상화폐 천국이라고 까지 불렸던 일본은 올들어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투기와 신사업 투자를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日, NEM 해킹 사고 이후 거래절차에 대한 규제 강화

일본 정부는 그동안 가상화폐를 제도권 시장에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허용,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로 인정하는 진보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정부의 인가를 받은 가상화폐 거래소만 16개에 달했다.

올해 1월 초만 하더라도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대신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관련)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8일(현지시각) 일본 금융청은 가상화폐 거래소 2곳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7개사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전격적인 규제에 나섰다.

가상화폐를 인정하는 대신 거래에 투자자 피해애 대한 조치는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일본 당국이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것은 '금융 소비자 보호'다. 금융청은 내부 관리와 보안 대책이 미흡한 거래 사이트를 엄격히 감독하고 가상화폐를 탈취당한 고객에 대한 보상과 가상화폐 반환 등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금융청은 일본 기업들의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한 자금조달 역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ICO는 기업이 독자적인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교적 쉽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낮은 진입장벽과 미비한 검증 절차로 인해 투자자들이 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ICO 관련해서는 명확한 법이나 규정이 없다. 이에 일본 금융청은 부적절한 ICO를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할 계획이다.

■美, 가상화폐 거래 감독 강화… 투자자 보호

규제와 허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미국도 가상화폐 대중화에 앞서 정책을 정비하는 모양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등록된 가상화폐 거래소와 전자지갑 서비스 업체에 한해서만 영업을 허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재 미국 내 많은 가상화폐 거래소가 정식 등록하지 않거나 별대른 감독없이 영업하고 있어 투자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지난 6일에는 미국 법원이 가상화폐를 '상품'이라고 판결했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 동부지방법원의 잭 웨인스틴 판사는 가상화폐도 미국 상품 선물거래위원회(CFTC)에 의해 '상품'으로 규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유럽연합, 가상화폐 투자는 전 세계적 현상… 국제적 대응 강조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6일 국제사회 차원에서 가상화폐 규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독자적인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상화폐 투자는) 전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수준의 대응이 중요하다"며 "만약 가상화폐에 따른 위험이 고조됐는데도 국제사회에서 이를 막기 위해 아무도 명확히 나서지 않을 경우 EU 차원에서 나서는 걸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여전히 정책공백

한국에서는 아직 가상화폐 투자와 거래에 대한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최흥식 금융감독위원장이 "가상화폐에 대해 앞으로 규제보다는 정상적인 거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후속조치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올초 법무부 장관이 밝혔던 가상화폐거래소 폐지 정책이 전면 중단되는 등 강경 규제 중심의 논의는 한풀 수그러들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특정 국가의 지나친 규제는 국부유출과 기술발전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국내 거래소 거래가 막히자 많은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발길을 돌렸다.
때문에 규제와 허용의 조화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난 14일 한국을 찾은 세계 3대 가상화폐 중 하나인 '리플'의 최고경영자(CEO) 브래드 갈링하우스는 "일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가상화폐 규제 방침에 대해 동의한다"면서 "특히 ICO를 두고 사기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각국 정부의 사려 깊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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