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펀드·채권·IB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무역분쟁과 무역전쟁 사이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6 15:07

수정 2018.03.26 16:30

자료=현대경제연구원
자료=현대경제연구원

금융가에선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는 분석들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의 안전자산선호 무드 속에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가격이 올랐지만 미국, 중국 양국이 서로에게 손해가 가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진단이 적지 않은 것이다.

우선 당장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시정을 정책 목표로 두고 있는 데다 갈등의 강도는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맷집을 테스트 해보면서 적정선에서 이익을 챙기고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11월 중간선거 전에 무역 부문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격화돼 소위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미국 역시 성장률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현실적인 이익을 얻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중국이 미국 농산물에 대한 보복관세 뿐만 아니라 항공기와 자동차 분야에서 보복에 나온다면 미국 역시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

최근까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주식과 채권이 희비를 주고 받고 있지만, 학습효과가 누적되면 금융시장의 반응 강도 역시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GDP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간 무역분쟁이 확산될 경우 글로벌 경기 둔화는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G2가 극단적인 충돌은 피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 실제 무역전쟁이 일어난다면...

과거 무역 갈등이 가장 심화됐을 때로 대공황 시기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 법안을 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무역 갈등이 증폭돼 글로벌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주의 대두, 자국 통화 평가절하 경쟁 등으로 글로벌 교역량이 30% 가량 줄어들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60% 이상 줄어 들어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무역전쟁 발발시 글로벌 교역량 감소에 따라 모든 나라가 타격을 입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대공황 당시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산업생산은 경제가 정점이었던 1929년 6월 대비 1932년 7월에는 40% 가까이 줄어 들었고 주식시장은 1932년 6월에는 약 70%까지 위축됐다"면서 "당시엔 실물경제 위축과 경기회복 지연으로 주요국에서 실업자들이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관은 국지적 무역갈등이 전 세계 국가들의 경쟁적 관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효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전 세계 평균 관세율이 1%p 높아질 경우 국가들의 교역량은 평균 0.48%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선진국의 경우 전 세계 평균 관세율 1%p 인상 시 교역량은 0.58% 줄어들고 개도국의 경우 교역량은 0.30%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전 세계 평균 관세율 수준인 4.8%에서 평균 관세가 10%로 높아질 경우 국가들의 교역량은 2.5% 줄어들고 평균 관세가 20%로 높아질 경우 국가 평균 교역량은 7.3%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량 감소는 당연히 수출 주도국가인 한국의 수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또 관세율이 현재 4.8% 수준에서 10%로 높아질 경우 국내 수출액은 173.0억 달러 줄어 들고 관세율이 20%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국내 수출액은 약 505.8억 달러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 기관은 관세율이 10%로 인상되면 국내 경제성장률이 0.6%p 하락하고 15%로 오를 경우 경제성장률 1.2%p 하락할 것으로 봤다. 관세율이 20% 인상될 경우 경제성장률 1.9%p 하락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전세계 평균 관세율이 4.8%에서 10%로 인상 될 경우 고용이 15.8만명 감소하고 15%로 오를 경우 고용이 31.1만명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 인상될 경우 고용의 46.3만명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 무역전쟁 현실화 가능할까..경제적·정치적 측면 볼 때 쉽지 않을 것
무역전쟁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 즉 1930년 전후의 일이 이 시대에 재현될 수 있을까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많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실제 과거와 같은 무역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길 원한다. 때문에 미국은 주로 중국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무역전쟁을 일으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한적인 측면도 있다.

미국이 중국의 IT 제품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노동집약적인 상품들은 미국에서 이를 오롯이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물가가 올라갈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11월 미국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주의 스탠스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미국 중서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지지를 얻어내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역시 이같은 트럼프의 약점을 알고 있다.

경제 석학인 조지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무역갈등이 커지면 트럼프가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공화당 텃밭인 농업벨트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의 '강한' 발언 이후 물러서는 듯한 유연한 모습도 무역전쟁 비화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 발표 이후 다시 많은 나라들에게 이를 유예시키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강력한 철강 제재를 피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강하게 으름장을 놓은 뒤 협상에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기질도 감안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이 옥죄려고 하는 상대방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현실적 측면'도 작용하고 있다.

변준호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역분쟁이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 명분 부족 △ 무역 적자가 중국에 한정된 문제라는 점 △ 미국도 대체로 전면전은 반대한다는 점 △ 과거의 (만만한) 중국이 아니라는 점 △ 선거용 전략 성격이 가미될 경우의 역풍 가능성 △ 과거 경험상 미국에게도 좋지 않았던 점 등을 꼽았다.

그는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흐를 가능성은 낮다. 이번 무역 분쟁은 일부 국가, 일부 품목에 해당되는 국지전 성격을 띌 것"이라며 "트럼프는 철강 관세 때와 달리 이번 중국 관세에 대해선 ‘행정명령’이 아닌 ‘행정메모’를 지시해 30일 협상 여지를 열어뒀고 중국도 협상을 환영한다는 의지 표명을 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모두 전면전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무역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보다 중국의 타격 가능성이 큰 만큼 중국 쪽의 양보가 나오면서 이 문제가 풀릴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이 과거보다 더 강해지고 세밀해졌지만, 그래도 미국보다는 중국 쪽이 잃을 게 많다는 관점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중간 무역갈등이 심화될 경우 중국이 받을 타격이 더 크다"면서 "따라서 중국은 미국 관세인상 조치에 대해 반발은 하고 있지만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측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축소할 수 있는 조치, 금융시장을 포함해 자국 시장 개방 추가 확대, 위안화 절상폭 확대 등의 카드를 통해 협상의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안전자산선호 계속될 수 있을까
최근 G2간 무역분쟁이 주가 하락과 채권가격 상승 재료로 작용했다. 이 이슈는 향후에도 금융시장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운데 계속해서 안전자산선호를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할지 봐야 한다.

최근의 무역 분쟁은 2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 수입품 500억 달러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보다 본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미국의 무역관세 조치에 대응해 3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돈육, 철강, 농산물 등 128개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보복 대응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는 15일 이내에 세부 계획을 공표하고 30일간의 경과기간을 거쳐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당분간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의 경우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4%이나 전체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1.6%에 달한다. 중국의 경우도 전체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19%에 달하나 전체 수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4%다.

하지만 최근 미-중 갈등 문제는 일부 언론의 호들갑에 휩쓸리기보다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산 수입품 부과대상의 규모(500억달러) 및 관세율(25%)은 예상보다 온건하다는 평가도 나온다"면서 "미국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대상 규모 500억달러는 전체 중국 수입액의 9.9%다. 일부 시장의 예상과 같이 관세율이 25% 부과될 경우 관세 부과 금액은 125억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중국의 전체 GDP 대비 0.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국이 쟁점사항에 대해 단기적으로 가시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데다 관세부과 시행까지 한 달 이상 남았다는 점에서 무역정책 관련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런 점이 안전자산 선호심리와 더불어 채권시장의 강세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미국의 관세 부과가 확산되지 않거나 협상 과정에서 관세 부과 대상 규모가 축소될 경우 실제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오히려 관세부과는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관세 부과 품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당 수가 전자제품이나 전자 장비이며, 상당 부분은 애플 등이 중국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에서 소비되는 전자 제품의 가격 인상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확산되지 않을 경우 성장 둔화는 제한적인 반면 오히려 물가 상승을 통해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도 "관세 부가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연준의 금리인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이 무역분쟁 과정에서 미국채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경우 미국 채권시장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중국의 미국채 투자가 감소하는 국면에서 미국채 10년 금리가 상승했다는 점에서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주미 중국 대사가 미국의 보복관세에 대응해 미국채 매입을 줄이는 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모든 가능성은 열어둔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한 텔레비전 매체가 '미국채 매입축소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주미 대사는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이면서 보호주의적인 행동이 미국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본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 기준 중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총 1조1700억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최근 미국채 매입 비중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다만 이는 외환보유액 운용 과정에서의 비중 조절이며, 미국채를 대규모로 판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국이 말 그대로 미국채를 대량 매도한다면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중국도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패가 적지 않은 셈이다.

앞으로도 무역 관련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분쟁의 강도가 강화될지, 누그러질지 애매한 부분도 있다.
다만 이번 사태로 글로벌 경기에 대해 비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진단들도 많다.

모간스탠리 글로벌경제팀은 "무역 분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하지만 강력한 글로벌 수요, 특히 자본적 지출이 이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간스탠리는 "미국이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파트너들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으면서 대항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 성장세는 양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