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장사익, 노래의 힘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1 17:06

수정 2018.04.01 17:06

[데스크 칼럼] 장사익, 노래의 힘

만약 이 세상에 노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더 삭막하고 심심하지 않았을까. 기쁜 일은 더 기쁘게 하고, 슬픈 일은 덜 슬프게 하는 게 노래이니까 말이다.

노래는 '놀다(遊)'라는 동사에 명사화된 접미사 '애'가 붙어서 '놀애', 즉 노래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노래가 갖는 순기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래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락적, 유희적 기능이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후예인 우리는 노래 부르며 힘든 노동과 무료한 일상을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정화(카타르시스)의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노래를 통해 응어리졌던 마음을 풀어헤치고 우울한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할 수 있어서다. 노래하고 나면 복잡하게 얽혔던 심리적 상태가 평정을 되찾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맘껏 소리 지르고 난 후의 그 후련함 때문에 사람들은 노래 부르러 노래방에 간다.

노래에는 화합의 기능도 있다. 다 함께 노래 부르다 보면 동류의식이 생겨나고 일체감도 형성되게 마련이다. 주말 야구장에서, 시위 현장에서, 신입사원 교육장에서 이른바 '떼창'을 목격할 수 있는 이유다.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고성방가가 아니라면 마법 같은 힘을 선물하는 떼창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장사익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노래꾼을 알고 있다. 오만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나이 마흔다섯에 노래 부르는 걸 직업으로 갖게 된 그를 두고 누구는 '소리꾼'이라 하고, 누구는 '가수'라 하고, 또 누구는 '가객'이라 부른다. 이름이야 어떻든 그의 직무(職務)는 스스로 노래 부르고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의 노래는 시쳇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호소력이 있다. 그에게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恨)의 정서를 묘하게 건드리는 재주가 있다. 맑고 깨끗한 노랫말과 애끓는 듯한 창법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말갛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하게 씻어낸 후의 그 홀가분함이 그의 노래가 가지는 힘의 요체다.

그의 노래 중에는 '찔레꽃'이라는 게 있다.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노래는 한국적 리듬에 단순한 노랫말이 반복되지만, 성대를 긁어올리는 듯한 탁성(濁聲)으로 있는 힘껏 노래하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부분에 이르면 인생 좀 살아봤다는 사람들이 핑그르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질박한 그의 노래가 주는 따뜻한 위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흘러간 옛 유행가도 그가 부르면 색다른 맛이 난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등이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릴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치고 환호한다. 아이돌 가수들의 콘서트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광적 호응과는 또 다른 모습의 소통이다.


3일 밤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이 열린다. 매년 봄 파이낸셜뉴스가 개최하는 신춘음악회 무대다.
그가 부르는 노래에 문득 흥이 돋아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노래를 따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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