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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해외 대기획 3탄] 디폴트만 여섯번.. ‘공짜중독’에 무너진 富國

이태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2 17:26

수정 2018.04.02 20:27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 아르헨티나
병원 공짜지만 의사가 없고, 학비 공짜지만 선생이 없어
무상복지 당연하다는 국민, 삶의 질은 갈수록 ‘바닥’
지난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부의 '무상 복지' 정책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물가급등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만큼 정부가 복지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무상복지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이태희, 남건우 기자
지난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부의 '무상 복지' 정책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물가급등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만큼 정부가 복지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무상복지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이태희, 남건우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이태희 남건우 기자】 아르헨티나에서는 많은 것이 '공짜'다. 등록금 없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닐 수 있다.
웬만한 질병은 무료로 치료해주니 몸이 아파도 걱정 없다. 전기.가스 요금은 보조금을 받아 납부한다.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인 콜론극장에선 매달 무료 공연이 열리는 등 문화복지도 수준급이다. 모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달콤한 복지 속에 '독(毒)'이 숨겨져 있었다. 잘나갈 땐 몰랐지만 경기가 나빠지니 서서히 나라경제를 마비시켰다. 세계경제 5위권에 진입했을 정도로 부유했던 국가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이후로 여섯 번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그러나 집권했던 어떤 정권도 원인을 도려내지 못했다. 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무상복지는 그렇게 조금씩 부풀어왔다.

무상복지 정책은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다. 국가가 국민생활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은 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최근 복지서비스 질이 갈수록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계속된 경제위기로 재정상황이 어려워졌는데도 무상복지를 강행하려다 보니 한계에 도달했다.

질 낮은 공공서비스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방, 도시 가릴 것 없이 국립병원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환자는 늘어나는데 관리할 의료진은 부족하다. 국립두란병원으로 가족 병문안을 왔다는 수사나씨(61.여)는 "치료를 받을 때 돈 한푼 내지 않는 것이 맞기는 맞다"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입원하면 생필품이 모자랄 때가 많다"며 "환자 침대에 이불도 없고, 간호사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육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자녀 손을 잡고 등교를 도와줄 정도로 교육열 높은 학부모가 많지만, 그들의 얼굴이 마냥 밝지 못하다.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다는 카를라씨(37.여)는 "교사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보니 교육에 전념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심지어 학교를 며칠씩 빠지는 교사도 있다"고 털어놨다.

물가상승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펼치는 무상복지 정책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적신호가 켜진 실물경제를 당장 복구시키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택시기사 카를로스씨(67)는 "차를 바꾸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사이 가격이 너무 올라버려 구매를 포기했다"며 "월급을 받아도 돈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다른 복지정책이 무슨 소용이냐"고 꼬집었다.

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직장인 에텔씨(29.여) 역시 "도로를 깔고 공공시설을 개선하는 인프라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가 '이제 그만'이라는 신호를 국민에게 보내야 할 때가 왔다"고 복지정책 확대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만 아르헨티나 국민과 전문가들은 복지정책 자체를 직접적 경제위기 원인으로 꼽지는 않는다.
1946년 당시 후안 페론 대통령이 펼친 대규모 무상복지정책 '페로니즘'은 이들에게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다. 국민들은 대신 복지정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치권에 화살을 돌린다.
특히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1970년대 후반 군부독재정권은 '악의 축'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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