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너 메갈이니?" 사상 검증 요구하는 사회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3:40

수정 2018.04.15 13:40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페미니즘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남성팬들이 반발하며 아이린의 사진을 찢거나 태우기도 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페미니즘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남성팬들이 반발하며 아이린의 사진을 찢거나 태우기도 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TOS)의 원화가 A씨는 '메갈(리아)' 의혹에 휩싸였다. A씨가 한국여성민우회 트위터 계정을 팔로하고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은어)' 같은 단어가 포함된 글을 공유했다며 이 게임의 남성 사용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급기야 TOS를 개발한 게임사 IMC게임즈 대표가 A씨에게 이를 추궁한 사실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이런 형태의 '사상 검증'이 최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예인부터 일반인까지 사상 검증 강요
15일 여성계에 따르면 최근 여자 아이돌 가수들도 사상 검증의 도마에 올랐다. 에이핑크 손나은은 '소녀는 뭐든지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문구가 적힌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올렸다가 남성들의 뭇매를 맞았다. 손씨는 해당 글을 내렸고 소속사는 "손나은이 해당 브랜드 화보 촬영으로 미국에 갔고 현지에서 행사 물품으로 해당 휴대폰 케이스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레드벨벳 아이린은 팬미팅에서 근황을 묻는 질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답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국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로 인해 많은 남성팬들이 분노하며 아이린 사진집을 불태우는 인증샷을 올렸다. 또 AOA 설현은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아직은 공부하는 단계지만 여성에 관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을 뿐인데 남성 네티즌들은 "역사 공부나 해"라고 빈정대는 댓글을 남겼다.

사상 검증은 연예인만 대상이 아니다. 이지선양(가명)은 "남자 담임선생님이 '너는 시집 언제 갈래'라고 묻는 등 불편한 대화에 '요즘 세상에 누가 한국남자랑 결혼하냐'고 하자 '너 메갈하냐'고 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상에서 여성들이 어떤 권리를 주장하면 남성들은 '메갈 쿵쾅쿵쾅'이라고 비아냥댄다. 쿵쾅쿵쾅은 상대를 뚱뚱한 여자로 단정짓는 비하표현이다.

■"가치 전체 부정하는 꼬투리잡기"
이른바 ‘메갈’로 불리는 메갈리아는 현재는 없는 커뮤니티다. 한 때 페미니즘 지지자들이 이 곳에 모여 기존의 여성혐오적 표현들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대로 남성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의 미러링을 하나의 전략으로 택했다. 그러나 남성혐오라는 비판 속에 내부 갈등을 빚다가 사이트는 폐쇄됐다. 그런데도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하면 남성들이 "너 메갈(회원)이니?"라고 몰아붙이며 사상 검증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오는 19일 관련 집담회를 갖는다. 민우회 이윤소 활동가는 "최근 IMC게임즈 사태처럼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볼 생각은 없이 그저 욕할 때 쓰는 표현이 메갈리아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거론되는 메갈은 페미니즘 혐오, 여성혐오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IMC게임즈 사태 당시 "여성노동자에 대한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과 전향 강요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 인권탄압을 정당화했던 빨갱이 사냥처럼 메갈몰이를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현재 메갈이라는 단어는 여성인권과 페미니즘에 관련된 모든 것에 부여하는 낙인이자 욕설 같은 방식으로 쓰인다"며 "메갈리아 커뮤니티가 있을 때도 한국 남자들을 기분 나쁘게 했다는 것 말고는 부작용이 별로 없었고 있을 수 있는 일부 틀린 주장을 빌미로 가치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꼬투리잡기"라고 지적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