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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환율 미세조정권까지 내주는 일 없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5 16:52

수정 2018.04.15 16:52

美 "개입 내역 밝혀라" 압박.. 급변동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국이 환율조작국 명단에서 빠졌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환율을 조작하는지 좀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한국은 다섯번 연속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랐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역적자국이다. 한국도 대미 무역에서 꾸준히 흑자를 올리는 나라 중 하나다.
일자리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미 무역흑자국들은 눈엣가시다. 이번엔 매를 피했지만 앞으로도 미국은 무역흑자국들을 더 거칠게 몰아붙일 것 같다.

당장 미 재무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고 팔을 비틀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0억달러 규모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수치까지 내놨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원화 값이 갑자기 오르면 수출에 마이너스다. 그만큼 해외에서 국산 제품 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급격한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 종종 스무딩 오퍼레이션, 곧 미세조정 차원에서 시장에 개입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문제 삼았다. 도대체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얼마를 사고팔았는지 내역을 밝히라는 것이다. 앞서 미국은 환율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한 묶음으로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기획재정부는 즉각 이를 부인했으나, 한 묶음이든 별개 협상이든 분명한 것은 미국의 완고한 자세다. 이번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큰 과제를 떠안았다. 사실 정부도 오로지 환율주권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환율은 우리 마음대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뻗대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 경제는 72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2월 기준)를 기록 중이다. 누가 봐도 원화가 균형점을 찾아 강세(환율은 하락) 쪽으로 움직이는 게 맞다. 그런데 너무 빨리 움직이면 수출이 지장을 받을까봐 정부가 나서서 템포를 조절한다. 미세조정이다. 미국 같은 적자국 눈에는 이런 조정마저 눈에 거슬린다.

그렇다고 환율을 마냥 시장에 맡겨둘 순 없는 노릇이다. 원화는 달러.유로.엔.스위스프랑 같은 기축통화가 아니다. 20년 전 외환위기, 10년 전 금융위기 때 드러난 것처럼 큰 위기가 닥치면 원화는 바람 부는 날 갈대처럼 흔들린다. 따라서 미세조정은 필요하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기구도 신흥국의 불가피한 조치로 허용한다.


김동연 부총리는 20일 워싱턴DC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만난다. 여기서 장차 한국이 펼 환율정책 틀이 결정된다.
개입 내역을 공개하더라도 미세조정권만은 꼭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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