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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美환율보고서 읽기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6 14:59

수정 2018.04.16 19:05

자료=기획재정부가 정리한 미국 환율보고서의 주요 내용
자료=기획재정부가 정리한 미국 환율보고서의 주요 내용

미국이 4월과 10월에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이전과 같은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됐다. 한국은 2016년부터 5차례 연속으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셈이다.

이는 국내 당국자들이나 금융시장 관계자들 다수가 예상하던 바였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시간으로 14일 오전 6시에 주요 교역대상국의 거시경제와 환율정책보고서(Macroeconomic and Foreign Exchange Policies of Major Trading Partners of the United States)를 홈페이지에 게재해 평가결과를 공표했다.

미국 재무장관은 1988년의 종합무역법과 2015년의 교역촉진법에 따라 매년 반기별로 주요교역국의 경제 및 환율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이번 미국의 환율보고서에서 심층분석대상국(교역촉진법 기준) 또는 환율조작국(종합무역법)으로 지정된 나라는 없었다.


한국과 함께 중국, 독일, 일본, 인도, 스위스가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인도를 제외한 5개국은 이전에도 관찰대상국이었던 나라들이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미국이 제시한 세 가지 기준에 해당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흑자 △ GDP의 2%를 넘는 달러 순매수 개입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2017년 230억달러 흑자), 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흑자(5.1%) 등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다. 하지만 외환시장 순매수 개입 규모가 0.6%로 나타나 '2% 초과' 허들에 크게 못 미쳤다.

심층분석대상국이 되기 위한 3개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나라는 없었다. 일본, 독일, 인도, 한국, 스위스가 2개를 충족했다.

3개 요건 중 2개를 충족할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되지만 지난해 4월부터 미국은 대미 흑자 규모와 비중이 과다하게 큰 국가의 경우 1개 요건만 충족해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이는 당연히 중국을 겨냥한 조치였으며, 중국은 1개만 충족하되고도 관찰대상국이 됐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규모는 3750억달러로 2위인 일본(690억달러)의 5배를 넘었다.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미국의 주요 교역대상국 13개 국가를 평가한 결과다. 평가 대상은 중국, 일본, 독일, 인도, 한국, 스위스 등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6개국과 멕시코, 이탈리아, 캐나다, 대만, 프랑스, 영국, 브라질이다.

■ 미국의 교역 파트너들에 대한 요구
미국은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들의 상황을 분석한 뒤 각국에게 일정한 요구를 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에 대해선 "미중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면서 "중국이 경쟁적 평가절하와 경쟁적 목적을 위한 환율 타게팅을 지양한다는 G20 공약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에 대해선 높은 대미 무역흑자 지속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에 대해선 "대규모 흑자국으로서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책임이 있다"면서 "내수 활성화와 재정개혁 등을 통해 유로화의 실질실효환율을 절상시켜 과다한 대외 불균형 해소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즉 중국, 일본, 독일 등 미국에 대해 600억달러 이상의 대미 흑자를 기록 중인 나라들에 대해선 미국에서 거두는 큰 흑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중국과 독일에 대해선 위안화나 유로화가 달러에 대해 절상되는 방향으로 좀 움직여 달라는 직·간접적인 요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 대해선 대미 무역흑자가 감소하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규모도 줄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더' 신경 써 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6년에 비해 50억달러 감소한 230억달러로 서비스수지를 포함할 경우 103억달러 수준"이라며 "경상수지 흑자는 2017년 GDP대비 5.1%로 2016년의 7.0%에 비해 줄어들었고 이는 서비스수지 적자에 주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재무부는 그러면서 "외환시장 개입의 경우 2017년 하반기 원화가 절상되는 과정에서 확대됐다"고 했다.

재무부는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면서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하길 바란다. 한국이 내수를 지지하기 위한 충분한 정책 여력이 있으므로 확장적 재정정책이 대외불균형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GDP 대비 경상수지, 미국 환율보고서 내용 중
/GDP 대비 경상수지, 미국 환율보고서 내용 중

■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투명화 요구
미국 환율보고서는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선물환 시장을 포함해 한국은 2017년 외환을 90억달러(GDP의 0.6%) 순매수했다"고 지적했다.

환율보고서는 "이같은 개입은 원화가 달러에 대해 7.2% 절상되고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1.8% 강해졌을 때 이뤄졌다"고 했다.

환율보고서는 특히 연말, 연초에 이뤄진 한국의 환 시장에 개입에 대해서 따로 언급했다.

보고서는 "원화 강세 압력에 대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2017년 11월과 2018년 1월에 높아졌으며, 이 기간 개입액은 100억달러에 달했다"면서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원화가 1.8% 절하되고 한국은행 순선물환 포지션이 30억달러 줄어든 2월엔 달러 매입규모가 줄었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미국 재무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를 끌어들인다. IMF는 한국 원화가 2010년 이래 매년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엔 1~12% 절하돼 있다고 본다는 내용을 거론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은 시장이 무질서해진(disorderly market condition) 가운데 '단지 진짜 예외적인 경우'(only truely exceptional circumstances)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동시에 보고서는 "한국이 투명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즉시 보고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 향후 미국의 추가 환율 압박 가능성과 재료 반영 인식
사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지난 3년간 축소돼 왔다. 이는 일본, 독일 등이 최근 흑자규모를 키운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해서 외환개입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당장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IMF-세계은행 미팅에서 IMF와 이 문제를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국제화가 덜 된 원화'의 지위를 내세워 정보 공개의 '예외'를 요구하기 어렵게 됐다. 외환정책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예견해 왔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한국만이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어렵다. 그간 한국만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게 사실 더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앞으로 국내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 등에 보다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환율 정책에 있어서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동안 시장이 미국의 원화강세에 대한 압박을 알고 있었고, 환율보고서의 내용도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했기 때문에 당장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도 이제는 '외환시장 개입 공개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미국의 눈치를 더 봐야 한다.

이제 국내 당국은 외환시장 개입 공개 주기를 어떻게 할지, 공개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협상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에 따라 시장의 민감도도 달라질 수 있다.

증권사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분류한 나라는 없었다. 다만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다"면서 "당장 환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향후 남북정상회담 등 지정학적 리스크 추가 완화와 함께 달러/원 환율이 한 단계 더 아래 쪽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증권사 분석가도 "한국의 미국에 대한 흑자규모가 줄었지만, 미국은 환율을 통해 한국을 더 압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 원화 강세를 계속 종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일단 우리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 공개범위를 어떤 주기, 어느 범위까지 할지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그간 원화 강세가 빠르게 지속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보인다. 이미 원화 강세 재료들이 상당부분 반영됐다고 보는 시각이다. 다만 향후 정책 사이드의 환시장에서의 역할이 줄어들 경우의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이슈가 나오고 달러/원이 1060원 초반 레벨로 떨어졌었다.
이후 원화 추가 강세 트라이가 이어졌으나 환율이 1050원대 중반에서 더 내려가진 못했다"면서 "배당금 역송금 수요도 있었지만, 급하게 환율이 내려온 만큼 올 만큼 왔다는 인식도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000원 초반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시간이 걸리는 문제로 보인다.
당장 달러/원이 1060원도 다시 못 깨고 위로 올라간 상태"라고 말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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